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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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신체의 40cm를 잃은 클로이의 생생한 일기, 조카 산지에게 들려주는 랄리의 여성주의적 발화가 감명되었다. 친밀한 인종주의에 굴종하지 않고 시종일관 호전적인 산지, 계급주의를 타파하고 사랑을 선택한 랄리, 수동식 엘리베이터 운전에 대한 디팍의 딴딴한 신념까지 전부 찬란했다. 휠체어를 탄 여자 클로이와 피부색이 다른 남자 산지의 로맨스도 흥미로웠다. 완연한 로맨스 서사는 실로 오랜만이라 낯설었지만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늘이 완벽히 걷히고 햇빛 쨍쨍한 클로이의 글을 읽으면서, 랄리의 곧고 다정한 어투를 읊조리면서 작가의 여성 인물 운용이 탁월했음을 느꼈다. 70대 노인 '리베라'가 병상에 누운 아내를 두고 거주민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서사가 아주 딴판으로 읽혔지만, 그 외 불편한 스토리나 편협한 세계관은 없었다. 뉴욕에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53대만 남아있다는 간간한 사실과 엘리베이터 승무원을 잠깐 보고 숭고한 직업의식을 이야기로 푼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다름, 차별, 혐오"의 콘텍스트가 덜 건조하게 드러나서 만족스러웠다. 소설은 '당사자성이 결여되었지만 그 곁에 설 수 있도록' , '그들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의 제스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14시 50분에 멈춰있던 클로이에게 "휠체어를 밀어주지 않음"으로써 시계를 거꾸로 돌린 디팍처럼, "그녀, 클로이"를 가능케한 섬세한 산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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