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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화자 '노라'의 시선을 좇아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된다. 노라까지도. 복선이 딱 짜 맞춰지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영원히 사라진 언니와의 미래, 언니 개인의 미래를 더듬더듬 짚는 노라의 미련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의 현재형 문장에는 허구가 담긴다. 언니가 없는 현재에 '실재하는 언니'와 언니가 없을 미래에 '할머니가 된 언니' 등 다양한 모습으로 현현한다. 애증으로 범벅된 관계여도, 눈물 한 방울 없이도 온 맘 다해 애도할 수 있는 자매의 관계성을 느꼈다. 잊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피해자 다움의 프레임에 가두는 건 어떤 근거에서 파생된 권리일까. 타인의 아픔을 재단하고 과단할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소거된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한편, 옮긴이의 친절한 해설이 부록으로 실려 있어서 소설의 핵심을 너끈히 파악할 수 있었다. 동생이 미워지려 할 때, 페미니즘에 지칠 때 꺼내서 띄엄띄엄 펼쳐보고 싶다. 노라와 레이첼의 일상을 덮쳐온 불안감과 공포가 오직 여성에게만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에 자못 서글퍼졌다. 그러나 소설 전면이 가리키는 페미니즘의 힘을 더욱 믿게 되었다. 여성의 일상과 같은 두려움을 걷어줄 단 하나의 사상이라는 걸 낙관할 수 있게 되었다. 스릴러만의 쫄깃쫄깃한 서사를 충족시키면서도 자매애를 수북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오랜만에 만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