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

이 책이 출간된 지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두루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는 과장되거나 감상적인 산문의 넋두리를 뛰어넘어 자신의 가족과 내면세계를 솔직담백하게 보여주는 작가의 소탈함에도 있겠고, 약한 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 사랑이 담겨있는 작가의 시각과, 당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집요한 해부와 흐트러지지 않는 비판정신에도 있겠다. 또한 냉혹한 작가 특유의 문체에도 있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매력은 전편에 흐르는 풍속화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김득신이나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고 매료되는 이유는,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어서도 아니고, 색체가 곱고 화려해서도 아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구나, 를 안 느낄 수가 없는 사실적 묘사와,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냉정하면서도 재기와 해학이 넘치는 시각이 풍속화의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거 아닌가. 영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이들 풍속화가들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찌 짐작이라도 제대로 해볼 수 있었겠는가.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풍속화로 비유할 있는 이유와 박완서를 풍속화가로 비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거나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70년대이지만, 우리의 과거를 한 번 돌아보고 현재 우리 사회에 시한폭탄처럼 장책돼 있는 위험요소가 뭔지를 파악해보는 데에 이 책은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도 있겠다. 또 정확한 기억으로 묘사한 <내가 잃은 동산> 이나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쓴 <내가 걸어온 길> 같은 작품도 이 책을 읽을 때 빼놓아서는 안 될 작품으로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나는 70년대,라는 말을 듣거나 보게 되면,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이유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태어난 게 70년대 중반인 데 대한 무조건적인 편애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말을 배우고 세상을 알아간 데 대한 애틋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연어가 모천의 기억을 더듬어 그 긴 여정에 오르는 것처럼, 내게 70년대는 모천과도 같이 의식적으로 더듬고, 집착하게 되는 시공간대이다.

그렇다고 70년대를 막연하게 그리워하거나 회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우선 70년대,하면 월남전쟁의 종전, 박정희 유신독재의 장기화, 석유파동, 한국이 개발도상국이 되기 위해 발악을 하면서 각종 도시문제로 몸살을 앓고, 이농현상으로 농촌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한 당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린다.

그 다음으로는 통기타 가수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남진`나훈아 같은 가수에 이어 이은하, 혜은이, 송창식, 윤수일, 최헌 등의 가수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시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시대, <미워도 다시 한 번> , <영자의 전성시대> 등의 영화가 흥행한 시대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듣거나 보거나 읽어서 아는 것들이지 내가 피부로 느낀 지식이 아니란 점에 한계가 있다. 그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이나 현상들은 70년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될 수 있겠지만, 70년대의 모습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데 또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내가 알고 싶어하는 건 굵직굵직한 것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다. 사람들의 구체적 삶의 모습이 결여된 역사가 뭔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역사만이 아닌 70년대의 구체적 모습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에 발표된 소설이나, 앞서 말한 가요나 영화 등이 보여주지 못한, 도시 서민들의 삶의 양태를 꼼꼼하게 보여준 것으로 박완서 선생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90년대 중반-94년에서 95년에 걸친 겨울-이었는데, 한 번 책을 잡고서는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내가 마치 70년대의 어느 거리와 골목, 어느 집 마당, 안방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의식주 생활, 이를테면 돈의 가치라든가 , 패션, 난방 시설 등등 서민들의 삶의 모습은 호기심을 일으키기기에 충분했다. 서민들의 건강하고 당당한 삶의 태도를 곳곳에서 만나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했다.

<머리털 좀 길어 봤자>, <고추와 만추국>, <노상방뇨와 비로드 치마> , <항아리를 고르던 손> 등을 비롯해 표제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를 읽다보면 얼굴을 일그러뜨리게도 되고 미소도 짓게 된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살았구나, 나와 가족, 이웃 넓게 70년대 한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