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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을 확률은 책을 좋아하지 않을 확률과 같을 것이다.(대충 그럴 일 없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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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이 다 해지도록 그림책을 보던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그림책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그리고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이 됐다. 아마 유치원도 가기 전에 <아기 돼지 삼형제>를 봤을 텐데, 초등학교 고학년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읽고 세상이 거꾸로 뒤집혔다.
그날 이후로 오랫동안 내 그림책 베스트에 늘 <늑대~> 책이 올랐는데, 지금 기억하기로는 중3때까지도 집에 소중히 보관해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과 다른 책을 사촌동생에게 빌려주면서 영영 돌려 받을 수 없게 됐지만. 다시 샀을 수도 있을텐데 사지 않은 건 이미 몇 번이고 봤던 책의 내용이 아니라 손때 묻은 추억이 중요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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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입시 준비를 하며 독서에 암흑기를 겪을 때 그림책도 함께 어둑한 곳에 갇혔다. 그림책에 대한 마음이 다시 빛을 받게 된건 입시에 대한 모든 부담이 사라진 성인이 된 후였다. 독립서점의 그림책들을 보며, 텀블벅에서 멋진 그림책들을 보고 후원하며, 외국 서점들에서 그림책들을 한아름 품에 가득 안으며, 어릴 때와는 또다른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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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이상하고자유로운할머니가되고싶어 라는 큰 제목보다 그 옆의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작은 제목이 더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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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멋진 것, 감동적인 것, 뭉클한 것들만 보면 몸에 오소소 곧잘 소름이 돋곤 했는데, 작가님이 설명해주시는 것만 들어도 이렇게 소름이 돋는데 실제 책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함께했다. 언젠가 이 책에 나온 그림책을 다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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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이 책을 읽을 때, 중반 정도까지는 겨울 밤이 생각났다. 욕심내지 말고, 한 밤에 한 이야기씩 따뜻한 이불에 파묻혀 듣는 이야기. 침대 옆에는 낮은 탁자가 하나 있고,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핫초코가 그 위에 올려져있는데, 핫초코에는 꼭 마시멜로가 둥둥 떠있어야한다.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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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장부터는 전혀 다른 마음이 든다. 상상 속에서라도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에 있을 자격이 없어지는 느낌.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라져가는 존재들. 그들을 향한 죄책감이 불편한 마음으로부터 찡그려진 미간 사이로 내려간다. 내리고 또 내려 달콤한 핫초코는 쓰디쓴 에스프레소로 바뀐다.
이 책은 비건을, 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대놓고 촉구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매체들 보다 마음에 더 무게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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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rown, Rose, and the Midnight Cat>의 존 브라운이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가장 먼 곳을 향해 마음을 움직(p.142)’였듯이, 무거운 마음을 무거운 채로 두지 말고 이제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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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라는 책을 읽고 정말 장래희망이 귀여운 할머니가 됐었는데, 이젠 다른 단어들이 좀 더 추가 됐다. ‘이상(異常)하고 자유롭고 귀여운’ 할머니! 앞으로 또 어떤 형용사들을 추가하고 싶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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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와 앞으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
이런 저런 ‘좋아!’들이 가득한 책.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 취향을 만났을 때의 설렘을 한군데도 빼지 않고 읽는 내내 전달해 준 책.
정말 이 세상의 모든 ‘너무’들을 모아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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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실 미래의 독자님들께. 꼭 천천히 야금야금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한 꼭지 한 꼭지 넘어가는 게 너무 아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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