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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평점 :
<미지의 걸작> , 오노레 드 발자크
💚고전이라 읽기 전에는 걱정이 앞섰는데 생각보다 너무 내 취향이라 깜짝 놀랐다. ´영생의 묘약’ 과 ‘미지의 걸작’ , 이렇게 두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둘 다 좋았지만 특히 좋았던 건 ‘미지의 걸작’ 이었고, 둘 다 읽으면서 좀 깜짝 놀랐던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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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묘약’ 을 읽고, 예나 지금이나 어떤 사람들은 영생을 꿈꾸지만 그 끝이 좋았던 경우는 별로 본 적이 없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줬다. 어쩌면 영원히 살겠다는 마음이 삶을 더욱 덧없게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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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아, 바보짓을 해도 네가 재미있는 것만 하거라.” -p.23
/그가 아버지 바르톨로메오를 위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낡은 괘종시계가 자신의 임무이 더 충실했다. -p.33
/모든 것이 풍요로웠고 향기로웠으며, 빛이고 멜로디였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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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모든 예술 분야의 책을 좋아하고 특히 잘은 모르지만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영감이 떠오르는 부분들이 많아서 즐겨읽는데 그래서 ‘미지의 걸작’ 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내 전공분야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새롭게 영감을 얻을 수 있던 부분도 있어서 너무 좋았던 단편! 이미 책머리에서 프렌호퍼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실제 화가들처럼 그 당시 실존했던 화가처럼 느껴졌고, 단지 종이 위의 글씨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안에 들어가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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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임무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네! 자네는 비루한 모방자가 아니라 시인이야!”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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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장을 보고 왜 하필 ‘시인’ 이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읽었을 때는 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마침 이번주에 예술철학 수업을 듣고나니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 소설의 배경과 시대는 맞지 않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회화(繪畫) techne 라는 이름으로 쉽게 말하면 기술, 가르침을 받아 배울 수 있는 것으로 구두 만드는 것 같은 공예나 수학, 천문학 등과 같은 카테고리에 넣어 지금과는 다른 범주의 ‘예술’ 안에 있었는데, 이때 시와 음악은 그 당시의 ‘예술’ 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시와 음악은 신으로부터 영감(enthousiasmos/inspiration)을 받아야하는 작업이라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들었다.
게다가 어원은 여러 음악의 신이든 시의 신이든 접신하여 영혼을 불어넣다/ 신의 숨결을 불어넣다 대충 이런 뜻이라고 하니, 그저 모방을 하는 것은 techne 의 영역이지만 그림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은 신으로부터 받은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영감의 영역이라고 고대부터 생각했던 것이 이어져와서 화가에게 ‘시인’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최대한의 지식으로 유추해봤다.
이런 다양한 생각과 유추를 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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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한창 젊을 때마 혹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 절정일 때 아떤 천재적 인물이나 걸작 앞에서 경험하게 되는 심장의 박동 같은 그런 깊은 감정을 느꼈다. -p.70
/미(美)란 엄격하고 어려운 것이네. 결고 이런 식으로 도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지. 그것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고, 그것을 캄색하고 압축해야 하며, 그것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긴밀하게 얽어매야 하네. -p.83
/여기 자네 그림에 무엇이 빠져 있나? 아주 사소한 것이지. 그런데 그 사소한 것이 전부이기도 하네. -p.86
/여기에는 두 번 붓칠하고 저기에는 한 번 붓칠했지만, 항상 너무도 적절해서 하나의 새로운 그림을, 빛으로 흠뻑 물든 어떤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p.91
/그를 모방하지 말게! 작업하게! 화가는 손에 붓을 쥐고사만 성찰해야 하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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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또 좋았던 점은 친철한 설명이 있었던 책머리와 부록들이었다.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게끔 할 뿐 아니라 이 책을 넘어서 상상하고 사유하게 만들어 줬던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