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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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락> -은모든

 

1_ 읽기가 정말 힘들었던 책. 읽는 중에 눈물이 나서 멈추고 읽기를 반복했다. 사실 지금도 생각과 감정이 정리가 잘 안 돼서 리뷰를 쓰기도 너무 어렵다. <안락>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안락(安樂)한 상태로 읽을 수는 없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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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한 사람의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모습을 제정신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책에서 할머니는 본인의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5년을 제시했다. 그 5년에는 할머니 본인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준비와 남은 가족들의 준비가 모두 포함되어있다.
스무 살 즈음, 그때가 아니라 지금쯤이라면 죽음에 더 의연하고, 죽음 이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겠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5년이든, 7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에 ‘안락사’가 합법화가 되고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러한 결정을 한다면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죽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것이고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슬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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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 물론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주체가 누구냐인 것 같다. 내 주변사람의 죽음은 무섭지만 정작 ‘나’의 죽음은 언젠가 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감도 안 나고 슬픈 감정도 당연히 없다(너무 실감이 안 나서). 그래서 그런지 만약 저런 법이 생긴다면, 어쩌면 나도 ‘00살까지 빡세게 살다가 0년 동안 다 탕진하고 죽음을 결정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물론 지극히 나외의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러한 결정을 원하는 사람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일 경우인데, 정말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날 걸 가정해봐도 정말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는 과연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내게 그 결정을 막을 권리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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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적을 것도 없어. 하자고 맘만 먹으면 간단해.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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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 할머니는 ‘말이 씨가된다’ 라는 격언이 아주 놀라울 만큼 잘 지켜지시는 분이셨다.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죽음도 이렇게 마음을 먹으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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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정말 가슴아팠던 문장은 아래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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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해지고 찢긴 옷에 비유했다. 다 떨어진 옷을 억지로 기워 입듯이 매일 자신의 몸을 약으로 기워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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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 어쩌면 안락사에 관한 문제는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나중에는 안락사를 결정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락사를 준비하기 편해지는 사회가 오길 바라지 않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안락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알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죽음보다 안락사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가 굉장히 힘든 사회라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안락사를 선택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병을 겪고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 같아서 그런 사회가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흐르는 물살을 제지할 수 없듯이 혹시라도 언젠가 올 미래라면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한 정의가 바뀔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그런 일이 진행된다면 그러한 삶에 적응하는 것이 내 삶의 또다른 과제가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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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_ 책을 읽기 전, 가볍고 작아서 휴대가 용이하다는 #작은책 의 ‘작은’ 면모만 보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작은책 에서 오는 파급력과 울림은 책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작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강이 아무리 넓고 바다가 아무리 넓다해도 아주 ‘작은’ 돌멩이가 표면에 남긴 ‘작은’ 울림에도 그 파동이 물의 끝에서 끝까지 다다르는 것처럼 나에게 큰 울림과 생각을 전해 준 #작은책 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각자의 울림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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