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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좋았던 7년>
1_ 작가의 말에서 부터 마음에 드는 책은 정말 드문데 이 책의 <책 머리에> 써있었던 글 중에 눈이 가는 문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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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내게는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만 존재한다. 친한 친구들과 이웃에게 하고 싶은 이아기, 그리고 비행기나 열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사람에게 하는 편이 더 좋은 이야기 말이다. (•••) 다음 페이지부터, 여러분은 나와 한 열차를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비막 페이지에 다다르면 나는 역이서 내릴 것이고, 우리는 아마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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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너무 일상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아무리 솔직하게 말한다해도 어느정도의 검열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차 혹은 비행기 등의 특수한 공간에서, 처음 만나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 말한다면 오히려 내 속에 있는 말을 더 진솔하게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에게 내 얘기를 막 꺼낸 적은 없지만, 나는 술을 마실 때 비슷하게 하는 것 같다. 계속 볼 사람들 앞에서는 큰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조절하면서 마시고, 정말 다시 볼 일 없을 거 같은 1회성 모임이라면 굳이 조절하지 않고 막 마셨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아예 모르는 사람, 그리고 다신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 경계가 풀어지는 일이 간혹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집필하시는 작가님이 히브리어 판을 출판하지도 않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작가님과 같은 기차 옆자리에 앉아 책을 ‘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으로 오직 낯선 이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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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우리나라는 누가 뭐래도 분단국가지만 사실 살면서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체감한 때가 몇 번 없다. 하지만 휴전 상태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상태라면? 우리의 일상을 지킬 수 있을까? 아마 나라도 곧 핵폭탄이 터진다는 정말 믿을만한 정보가 들어온다면 지금 시험 공부를 왜 해? 방청소를 왜 해? 하며 어쩌면 작가님과 그 아내 분처럼 은행에서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아 다 탕진해버릴지도 모른다. 아마 일상은 무너질 것이고 그 디데이까지 하루하루가 불안할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걱정은 작가님의 꿈에서 평화를 보았을 때 였다. 처음엔 ‘평화’ 가 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에 공격은 없었고 이란과 화해한다면 우리한테는 청소를 안 해서 더럽고 다 쓰러져가는 집에, 빚더미에, 과제에, 그리고 여러가지를 말한 아내 분의 말에 이 또한 걱정이 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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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벌써 여러 일들을 겪어냈잖아. 질졍, 전쟁, 테러 공격까지. 그러니 운명이 평화를 가져다준다면, 그것도 견뎌낼 수 있을 거야. -p.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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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평화’ 라는 말이 언제나 긍정적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도 견뎌내야 할 것으로 보는 저 문장에서 어쩌면 평화도 언제나 긍정적일 수 없음을 느꼈다.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면 분명 혼란을 수반할 것이고, 일시적인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 누군가는 그때 이것이 ‘평화’인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듯이 혼란과 평화는 어느정도 혼재해있는 것 같다. 그 비율이 평화 쪽에 가있어야 우리가 ‘평화’ 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너무 낙관적인 말일 수 있지만 한반도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분명 평화를 견뎌낼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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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 사실 무거운 주제지만 작가님의 필력으로 무거운 주제를 여러 일화로 재미있게 풀어내셔서 읽는 동안 웃음을 띠고 읽은 부분도 많다.
특히 작가님의 아들, 레브! 정말 너무 귀엽고, 뭇 아이들이 그렇듯이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한 톡톡 튀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말들을 했다. 그 중 가장 귀여웠던 것은 자신이 고양이라고 말하던 레브🐱❣️
4_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내용이 작가님의 아버님과의 일화들인데 기억에 남는 말도 많았고, 정말 좋은 아버지시면서 멋진 아버지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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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이라고 해봤자 당신이 참 예쁘다고 말하는 대신 글로 쓰면 되는 일 아닌가요. (•••) 나는 사는 게 좋아요. 삶의 질이 좋으면 다행한 일이지. 하지만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살면 되는 거예요. 난 까다롭지 않아요. -p.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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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란다. 나는 상황이 바닥을 칠 때 결정을 내리는 걸 좋아하지. 그런데 상황이 어찌나 암담한지 결국 이보다는 나아지는 것 밖에 없겠구나.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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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결정을 내리기를 좋아한단다. 잃을 것은 없고 얻을 것은 많을 때 말이지.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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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이 눈에 보일 수도 있는 때에 이렇게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정말 정말 흔치않을 것 같다. 당장 멀리 가지 않고 나로 생각해봐도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저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싶지만 만약 책을 안 읽었다면 저렇게 말 할 생각조차 못 했을 것 같다. 죽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 삶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생각인지 가늠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저 문장들이 내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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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_ 논픽션에세이라고 해서 괜히 무겁지 않을까 책 읽기 전이 지레 겁먹었지만 작가님이 글을 어떨 땐 유쾌하게 쓰시고 문체도 너무 좋아서 무거운 내용이지만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읽혔다. 나와는 먼 세상이야기라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에도 반성했다. 앞으로 이 주제에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찾아보며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