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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눈물 ㅣ 파랑새 사과문고 98
이규희 지음, Sunnu(서누) 그림 / 파랑새 / 2024년 7월
평점 :

여기 한 어린 세자가 있다.
천둥번개가 내리던 날,
저승전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으악! 저리 가. 어서 저리 가!"
"싫어, 안 갈 거야, 안 갈 거라고. 저리 가!"
영조가 늦은 나이에 첫아들이 죽은 후 7년 만에 태어난
선은 세상 빛을 본지 백일 만에 어머니 품을 떠나
외떨어진 곳에서 보모상궁들과 지냈다.
아비의 극진한 관심 속에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기었고,
일곱째 달에는 글자를 배워 63자의 한문을 읽었으면
여덟 살에는 그의 총명함의 나날이 더 해져
온 조정의 대신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광좌는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조아려 대답했습니다.
그는 조정에서 힘이 약한 소론 쪽이었습니다.
이광좌는 문득 선이 세 살이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효경과 소학에서 가려 뽑은 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가 나오자 선은 갑자기 입고
있던 자신의 옷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값비싼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벗어 버리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다 사치한 것입니다."
"오, 저하, 어찌 그리 생각이 깊으신지요!"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여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임금은 그런 선을 누구보다 어여삐 여겼습니다.
어느 날 임금이 선에게 물었습니다.
"비단과 무명 중에 무엇이 더 나은가?"
"무명이옵니다."
"그럼 너는 비단옷과 무명옷 중 어느 옷을 입겠는가?"
"당연히 무명옷이옵니다."
선은 임금의 물음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어린 세자는 그의 곁을 지키는 상민 출신의 돌쇠와 함께
궐 안에 머무르지 않고 궐 밖으로 잠행을 나가 백성들의 진짜 생활을 보고 느끼며 육의전, 큰 시장통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길 원했다.
"달쇠야, 도치야, 우리도 한 그릇씩 먹자.
아주머니, 여기도 한 그릇씩 주시오."
선은 빙긋 웃으며 국밥을 시켰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코를 박고 먹는
국밥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이 있었습니다.
"너희들 덕분에 이 맛난 음식을 먹었구나."
배불리 음식을 먹고 난 선을 아이들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들을 보며 안타깝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도적질이나
남을 해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 기술을 배우든지,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무예를 익혀."
무관이 되거나 글공부를 하여 나라의 녹을 먹을 생각을 하렴."
사도세자의 눈물 P37~38


앞날이 밝게 드리운 어린 세자였지만
한차례 큰 중병을 앓은 후
경종과 선의 왕후를 받들던 곳이라 불길하다고 여겨진
저승전에서 융경현을 거쳐 다시 경춘전으로 옮겨 가며
어린 시절 보모들과도 헤어지고 마음의 헛헛함은 깊어만 간다.
그러던 중 어린 나이에 중전과의 혼례로
그 책임감은 더욱 가중되고
점점 더해만 가는 영조의 깐깐한 양육 방식은
더욱더 어린 세자를 옥죄어 온다.
"어허 그래도 네 참마음을 숨기려 하느냐?
지난번에 네가 지은 시 중에서
'호랑이가 깊은 산에서 울부짖으니 큰 바람이 분다.'라는
구절을 보고 네 기운이 무척 강하다는 것을
내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임금은 화를 버럭 내며 꾸지람을 내렸습니다.
그러다가 선을 보며 다시 힘주어 일렀습니다.
"이 아비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모와 고통을 당했는지 아느냐?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더 학문과 지혜를 갈고닦았느니라.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학문보다 무예를 더 좋아하느냐?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용상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너 스스로 신하들보다 지혜가 뛰어나고,
더 영리해야 하느니라. 그래야 먹히지 않고 밟히지 않는다!
이제 겨우 나라의 안정을 되찾았는데
세자 너로 하여금 그것이 다시 흔들릴까 걱정이로다!"
"아바마마 명심하겠나이다!"
선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마음속의 방황을 겪던 중
전 집권층이었던 소론의 세력의 중심인
장희빈 마마와 큰 아바마마와 큰 어마마마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이자 현 왕인 영조가
그들을 시해한 뒤
왕위에 올랐을지 모른다는 심증이 굳어지며
더욱더 선은 영조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며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며 아비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영조는 자신감이 없다며
그런 선을 못마땅해 한다.

이러한 갈등과 오해의 골은
선이 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며 더욱더 깊어진다.
일찍이 바깥 잠행을 나가 백성들의 삶을 지켜보기 좋아했던
그는 집권층 노론과 소론에 치우치지 않고
굳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하였지만
오히려 이런 강직한 성품은 현 집권층인 노론의 반발과
미움을 사게 된다.

"그대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선은 다시 대신들을 향해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잔뜩 주눅이 들어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습니다. ......
"이 일은 나라의 국방에 관한 중요한 일이니
병조판서가 직접 함경도 성진과 길주를 살피고
온 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네, 전하."
선은 결국 자기 의견을 거둔 채 임금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 후에도 임금은 선이 하는 일에 이래저래 간섭을 했습니다. 선이 신하들과 만나 한 달에 여섯 번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일찍 끝내면 왜 일찍 끝냈느냐고 묻고,
툭하면 불러다가 닦달을 하였습니다.
이즈음 선은 자신의 귀중한 아들 세손이 태어난 기쁨도 잠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던 누이들
화평 옹주에 이어 화협 옹주까지 잃게 되자 마음의 울증은 더욱 깊어만 갔다.
또한 계속되는 영조의 변덕과 시험으로
아비에 대한 인정의 목마름과 미움도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부터 바른 말만 하고 인재 등용에 있어서도 차별을 두지 않던 세자 선을 눈엣가시처럼 보던
노론 대신들은 영조와 선 사이를 더욱더 이간질하며
아비와 아들은 건널 수 없는 감정의 골만 점점 깊게
만들어 간다.
"저하, 어서 환궁하시옵소서. 지금 유생들이 동궁전에 몰려가 저하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모두 노론 일파인 홍계희가 꾸민 함정이옵니다.
그들은 저하가 지금 평양에 계신 줄을 알면서도 저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려 일부러 그러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날이 밝기 전에 어서 환궁하시옵소서!"
......
선의 짐작은 그대로 사실이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얼마간 선이 경연과 서연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임금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뜻대로 임금마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올 것이 온 건가?"
사도세자의 눈물 P151


이 이야기의 세자는 훗날 사도 세자라고 일컬어진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인물이다.
아이들과 한국사를 읽을 때도 관심을 가진 역사라
다시금 같이 읽으며
사도세자의 불쌍한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엄마! 사도세자는 죽지 않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별나라로 가서
행복한 별이 되셨을 거예요."
"엄만,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미움과 오해로 서로가 아파하며
안타까운 죽음은 없었을 건데
매번 사도 세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이규희 작가님의 연령을 생각하는 접근이 좋았던 책,
아이들과 그 시대 왕의 무게와 한 아비와 아들의
감정들을 이야기하기 좋은 사도 세자의 눈물이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