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한국 - 랩 스타로 추앙하거나 힙찔이로 경멸하거나
김봉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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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하면 처음 생각나는 이미지

늘어진 바지와 큼지막한 티셔츠

살짝 더러워진 조던에 굵은 목걸이

금색 시계와 비싼 외제차, 명품


『힙합과 한국』의 표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외제차 앞에 래퍼가 서 있는 사진이다. [랩 스타로 추앙하거나 힙찔이로 경멸하거나] 라는 카피 아래 놓인 사진은 힙합에 대한 흔한 편견 또는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너네가 생각하는 힙합이 무엇이냐고.

저자는 힙합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상승 에너지'를 꼽는다. 힙합은 어쨌든 상승을 지향하고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고.

지금은 힙합 장르를 즐겨 듣지 않지만, 자주 들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저자의 말과 연결된다. 상승. 한창 힙합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상승을 원했다. 지금의 점수보다 더 높은 점수, 더 나은 등수로. 고등학교에서 원하는 대학교로. 지금 상황에서 더 나은 상황으로. 지금보다 더 괜찮은 지금으로.

힙합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인한 현재의 불안을 말한다. 혹은 과거의 나에서 '상승'하지 않고 머무를 수 밖에 없어 느끼는 불안을 이야기한다. 나에게 힙합은 위로보단 공감이었고, 그래서 찾게 되는 음악이었다. 힙합은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보단 자신의 상처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 힙합을 지금은 잘 찾아듣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일단 10대의 불안과 20대의 불안은 모양도, 색도, 무게도 너무나 다르다. 그때 들었던 노래 가사가 지금은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처럼, 그때의 불안은 지금의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형태다. 지난 기억은 모두 미화된다고 하지 않는가. 한창 빠져 들었던 김하온, 빈첸, 이제 부를 수 없는 래퍼의 노래. 그때는 한창 힙합 장르를 내세웠던 아이돌의 싸이퍼, 믹스테잎까지. 그 노래들을 지금은 듣지 않는 건 지금의 내가 그들의 가사에 크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듣는 힙합 노래가 있나, 또 생각해보면, 있다.

그 노래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없다는 점이다. 발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다. 같은 힙합 장르 중에서도 이런 노래를 선호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단호하게 힙합에서 디스 배틀하는 게 불편하다. 저자는 힙합에서 디스는 하나의 문화라고 얘기한다. "증오를 빼는 편"이라는 래퍼 김하온을 언급하며, 힙합에서 디스를 증오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짚는다.


그리고 힙합에서의 디스전을 스포츠에 비유하는데, 스포츠 선수가 상대팀에 친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경기에서 그의 공을 빼앗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듯 힙합에서도 친한 사람을 디스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힙합 디스전은 어떤가. 생각해보면 <쇼미더머니>나 <고등래퍼>, <언프리티랩스타>에 나오는 래퍼들이 서로의 외모, 성격, 그의 삶 자체를 깎아내리는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그 이후에 떠오르는 것은 디스전에서 랩을 저는 상대를 북돋는 모습, 또는 라임을 잘 살려 가사를 쓴 상대를 '리스펙'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상대편을 북돋든, 리스펙하든 디스의 소재는 같다. 상대의 실력보단 외모나 성격 등 실력 외의 것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

이런 '싸움'이 힙합만의 문화로 자리잡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은 확실히 힙합에 대해 많은 질문을 남기는 책임이 확실하다.

나는 힙합을 무엇으로 받아들여왔나. 나는 힙합을 어떻게 듣고 있었나. 나는 래퍼들, 힙합 장르를 향유하는 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었나.


한편, 힙합에 대해 200쪽이 넘는 긴 호흡으로 써내릴 수 있는 저자에게 '리스펙'을 보낸다. 이 책을 펼친 초반에는 특히 힙합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사랑이 가득 묻어 있어 '이렇게 힙합을 좋아한다고?'라는 생각에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거다. 누가 책으로 써달라고 하면 진짜 이렇게 200, 300 페이지 넘도록 구구절절 써내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만큼 힙합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힙합에 대해 더 잘 알려주고 싶어하는 이가 있구나. 대단하다.' 생각했다.

저자에게 힙합이 곧 정신과 의사였다는 것처럼 누구나 나만의 정신과 의사, 혹은 나를 치유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없어도 큰일은 아니다. 나는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를 살리고 더 잘 살게 하는 무언가에 대해서, 그리고 힙합이라는 세상이 살고 있는 저자에 대해서 궁금해진다면 이 책을 펼쳐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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