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계속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고스트 듀엣』이라는 책 제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문구다. 고인을 깊이, 애틋하게 애도하며 그와 함께 부르는 듀엣이라니. 이를 알고 책 표지를 다시 보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꽤 짧은 호흡의 단편 11개가 수록되어 있는 『고스트 듀엣』은 김현 시인의 첫 소설집이다.

「고스트 듀엣」

상민은 먼저 사고로 떠난 형우를 떠올린다. 형우라면, 형우라면,

형우는 상민에게 묻는다. 행복의 유령과 불행의 유령 중 어떤 유령을 맡겠냐고. 행복을 선택하는 상민에게 형우는 "행복과 행복이 늘 붙어 다닌다고 하면 덜 문학적 (p.77)"이라며 불행의 유령을 맡겠다 답한다. 상민은 묻는다. "그때 우리 둘 다 행복하기로 했다면, 우리가 덜 문학적인 고스트 듀엣이 되기로 했다면, (p78)" 그랬다면, 뒤의 삶을.

그런 상민에게 석찬은 말한다. "그냥 말하라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p. 86)" 형우의 이름을 부르라고.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기에 서로의 이름을 자주 부른다. 마음이 여린 네 사람이 서로를 애써 지탱하는 형우의 이야기에 답하는 상민의 이야기인 셈이다. 말하자면 행복이 불행에게."

- p.88

「유미의 기분」

"여자는 꼬리가 아홉 개라서 꼬리를 잘 친다."라는 말을 농담으로 내뱉은 교사 형석의 이야기다. 형석의 발언에 얌전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여학생' 유미는 형석에게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느냐 묻는다. 그래서 "형석은 기분이 나빴다."

애인 승우와 여행길에 오른 형석이 승우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겪은 혐오와 차별을 떠올린다. 이미 학교 사람들에게 '꼴페미', '메갈'이라며 야유를 받은 유미. 형석이 유미에게 사과를 건네기까지 형석의 내면에는 짙은 혼란이 인다.

꽤 익숙한 이야기다. 어쩌면 원하는 이야기다. 뻔한 혐오 발언에 유미처럼 날카롭게 대응하는 이야기. 뻔한 혐오 발언을 내뱉은 당사자가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반응에 기분 나빠하다 이내 ‘죄’를 깨닫고 사과하는 이야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뻔한 말’에 나만 아는 기분을 느껴왔나. 하나도 안 웃긴 말을 하며 당장이라도 감방에 넣고 싶게 만드는 행위를 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약아서, 개인이 느끼는 불쾌함을 그저 개인의 것으로 만들기가 너무 쉽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막연하다가도, 또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개인의 것만은 아니기에. 결국 공감과 연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과 단단히 뭉쳐지는 것. 그러다보면 그게 내 세상이 된다. 나의 세상.


"안 웃었다며. 안 웃기다고 했다며. 그게 죄야. 너만 웃은 거. 걔만 빼고 다 웃은 거."

- p. 108

"아, 이 편지는 나한테 사과하라는 거고, 내가 누군가에게 사과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거구나, 알겠더라고. 사과할 자격이 있는 사람, 그 말이 용기를 주더라고."

- p. 109

「견본 세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너무 다른 두 사람, 영수와 승남은 함께 살 집을 보러간다.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찾았지만 서로가 원하는 공간은 다르다. 다를 수밖에. 물떼 낀 싱크대, 다 깨진 조명, 죽어 있는 벌레 떼, 벽지에 슨 곰팡이를 보고 한 쪽은 잘 치우면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쪽은 아픈 발이 신경 쓰이고, 춥고, 술에 취해 참견하는 이웃(이 될지 모르는)에 신경질이 난다.

다름은 늘 왠지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사랑하는 이와 나의 다름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다름을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때는 그와의 관계가 전부 막연해진다.

승남과 영수를 보며 답답해졌다. 한 쪽 주머니에 같은 음료를 넣어 몸을 데우며 걷던 둘은 결국 서로에게 없어졌다. 그렇다면 그 이별은 서로가 어찌할 수 없는 다름 때문이냐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없다. 어떤 관계는 그냥 그럴 수 밖에 없어서 끝나기도 하니 말이다.

김현 작가의 글이 좋았던 이유는 이야기의 마무리에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이별, 화해, 용서 같은 것에 유난이지 않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헤어지고 재회하고 멀어지고 가까워진다.

나는 누군가 아픈 과거를 이야기할 때 아주 덤덤할수록, 최대한 아무렇지 않을수록 슬프다.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그의 삶과 내면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그래서 뭐라 위로 따위도 공감 같은 어떤 말도 섣부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때나. 어디서나.“

고스트 듀엣에서 상민은 석찬의 말을 따라 되뇐다.

애도에 ‘옳은’ 방향성을 묻는다면 석찬의 말을 인용할 수 있을 듯하다. 존재의 이름을 아무 때나 부르고, 존재와의 기억을 어디서나 꺼낼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우리는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했던 존재와 입 맞춰 부르는 듀엣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