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너지지 않았기에 서로의 이름을 자주 부른다. 마음이 여린 네 사람이 서로를 애써 지탱하는 형우의 이야기에 답하는 상민의 이야기인 셈이다. 말하자면 행복이 불행에게."
- p.88
「유미의 기분」
"여자는 꼬리가 아홉 개라서 꼬리를 잘 친다."라는 말을 농담으로 내뱉은 교사 형석의 이야기다. 형석의 발언에 얌전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여학생' 유미는 형석에게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느냐 묻는다. 그래서 "형석은 기분이 나빴다."
애인 승우와 여행길에 오른 형석이 승우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겪은 혐오와 차별을 떠올린다. 이미 학교 사람들에게 '꼴페미', '메갈'이라며 야유를 받은 유미. 형석이 유미에게 사과를 건네기까지 형석의 내면에는 짙은 혼란이 인다.
꽤 익숙한 이야기다. 어쩌면 원하는 이야기다. 뻔한 혐오 발언에 유미처럼 날카롭게 대응하는 이야기. 뻔한 혐오 발언을 내뱉은 당사자가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반응에 기분 나빠하다 이내 ‘죄’를 깨닫고 사과하는 이야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뻔한 말’에 나만 아는 기분을 느껴왔나. 하나도 안 웃긴 말을 하며 당장이라도 감방에 넣고 싶게 만드는 행위를 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약아서, 개인이 느끼는 불쾌함을 그저 개인의 것으로 만들기가 너무 쉽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막연하다가도, 또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개인의 것만은 아니기에. 결국 공감과 연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과 단단히 뭉쳐지는 것. 그러다보면 그게 내 세상이 된다. 나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