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희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산에 덩그러니 놓인 "탱크"

그 안에서 이어지는 "자율적 기도 시스템"

김희재 작가의 <탱크>는 믿을 수 밖에 없어서 믿는 이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믿음을 갖고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산을 넘어 "탱크"로 향한다. 어느 날, 탱크가 있는 산에 불이 났고 탱크마저 불에 타버린다. 그 날 그 안에서 꿈꾸던 미래가 비로소 '가능해지길' 기도하던 한 남자가 죽었다. 어두운 탱크 안에서 며 기도하던 남자는 결국 미래를 마주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다시 믿음을 행하기 위해 탱크를 새로 만들려 했다. 어떤 이들은 탱크로 향하는 사람들을 모두 사이비 종교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양우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둡둡도 이랬을까."라며 남자를 떠올리다, 비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다, 어느 날 밖으로 나갈 수 있길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양우가 바라는 미래, 둡둡이 존재하는 미래는 올 수 없겠지만. 그 죽음은 결코 양우를 지나가지 않겠지만 말이다.

남자가 탱크 안에서 안간힘 다 해 기도했던 미래는 결국 사랑이다. 모두가 모든 사랑을 상냥하게 받아들이는 미래. 남자는 그런 미래가 온다고 믿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믿어야 하기 때문에 믿으며 사는 삶이라, 더할 수 없이 서글프다.


이야기를 움직이는 인물이 많다. 도선과 양우, 둡둡, 부경과 하경, 그리고 규산까지. 인물들은 탱크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도선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1부부터 미래를 담은 4부까지 차근차근 쌓아가는 서사에 깊이 몰입해 책장을 넘겼다.

믿음에 대한 소설이라 소개되지만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 소개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싶고, 그와 함께 살고 싶고, 얘기 나누고 싶던 인물들의 기도가 담긴 글로 읽혔다. 이들은 무언가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기도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인간적 안간힘"을 다해 손을 모은 게 아닐까.

사랑에 대한 믿음만이 삶을 지속시키고, 사랑만이 견고한 세계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사랑에 헌신하는 이런 이야기에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 편혜영 소설가, 추천의 말 중


아무렇지 않게 살 수는 있었지만 진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도선은 쓰지 않는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다른 것에 열중하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도선의 세계 바깥에 있었다. - P21

도선은 죽을 힘을 다했다. 제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제때 먹고 자는 것도 모두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도선은 종종 멍해졌고 외로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까 싶었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이렇게나 죽을 힘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 자신 하나뿐인 것 같았다. - P23

그러나 사실 중의 사실, 할 수 있는 말 중에서도 해야 하는 말은 꼭 해야 했다. 도선은 말했다.

"탱크는 너무 어두워요."

반면 탱크 밖은 늘 밝았다. 이 극명한 빛의 격차는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 P138

그럼에도 도선이 챙크에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탱크에 갈 때마다 어떻게든 꿈을 상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희망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 P139

결국 떠난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들을 통해서 기억되고 회자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니, 어쩌면 삶과 죽음을 통틀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은 그뿐이다. - P162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도 어떤 미래는 오고 그 미래의 모양은 매우 익숙해서 주인공은 그것이 누군가의 꿈이었고 바깥이었던 것을 알아차린다. - P195

탱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탱크가 특별해진 것은 탱크가 꼭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탱크는 없어져야 했다. - P237

그것은 무언가를 강하게 믿고 희망을 가질 때 따라오는 절망의 문제였고, 세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맞닥뜨리는 재해에 가까웠다고. 그러니 언젠가 당신에게도 재해가 온다면 당황하지 말라고. 대신 잠깐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그러면 한 번도 기다린 적 없던 미래가 평상을 기다린 모양을 하고 다가오는 날이 올 거라고.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