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 - 삶을 가두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31가지 연습
허심양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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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잘 챙기고.”

“건강 잘 챙겨.”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헤어질 때

내가 어김없이 그들에게 전하는 이 말에는

시간 맞춰 밥 잘 챙겨 먹고

가벼운 운동으로 몸도 건강히 하고

좋아하는 노래도 자주 듣고 재밌는 것도 보면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달라는 바람이 담겨있다

그냥 아프지 말라는 당부에 더해

우리 각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잘 챙겨서

다음에 우리 만날 때도 웃으며 보자는 애정표현에 가깝다

나도, 너도, 아프지 말자고.


임상심리전문가 허심양 작가님은 우리가 경험한 크고 작은 외상이 남긴 트라우마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유로워질 수 있게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런 일을 겪었고, 그래서 어떤 증상을 겪고 있는 상태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여기서 인정이라는 건 체념과 다르다고 작가는 짚는다.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뒤따라야 하는 건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겪은 것이 거짓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부인하고, 과거의 자신을 탓하기보다

그 일이 이미 나에게 벌어졌음을 수용하고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변화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게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의 첫 단계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게 어쩌면 제일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냥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 싶고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고 아무도 몰랐으면 싶고 이 모든 불안함을 떨쳐내는 건 생각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뿐이다

조금은 씁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아직 부족한 용기를 스스로 키울 수 있다는 건 희망적인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저자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수용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지 선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라고 한다

천천히 내가 처한 현재를 바라보고, 지금의 감정과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

이런 마음 챙김이 우리가 트라우마에서 한 걸음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섭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 말고,

또는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고

나를 괴롭히는 기억과 경험을 직면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있기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와 싸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회복하고 난 후에 트라우마 극복에 힘을 써도 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챙김 받는 기분이 들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는 틈틈이 독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지금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떤 경험이떠오르는지, 누가 생각나는지 등등

그리곤 책을 잠시 덮었다가 나중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다시 책을 펼쳐도 좋다고 다독인다

이런 저자의 태도가 우리가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찬찬히 읽어나가다가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나를 돌보고

버겁다 생각되면 잠시 물러났다 용기가 생겼을 때 다시 직면하는 것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이제는 너무 일상 용어가 되어 버려서 너무 가볍고 또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지곤 하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면서 크고 작은 외상을 얻었기 때문에 이토록 '트라우마'가 일상 용어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안타까운 거지 ,,)

그리고 어쩌면 트라우마라는 게 대단히 충격적이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경험과 기억에 의한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먼 과거의 일들,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것들이 어딘가 쌓여 있다가 마음에 흔적을 내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트라우마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마음 챙김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 내 기분은 어땠는지, 뭘 보고 뭘 듣고 뭘 했을 때 편안했는지 스스로를 천천히 살펴보고 돌봐줘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쥐고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우리는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 연결되는 힘을 느낄 수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 삶으로 나아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주변의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전문 상담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상담자가 필요'하니 말이다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졌든 아니든, 트라우마를 겪었든 아니든, 모든 사람이 좀 더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모두 몸 잘 챙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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