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의 정오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서태옥 글.사진 / 초록비책공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사진 한장, 글 한쪽 이렇게 두개를 하나로 묶은 것이 한장 한장 엮인 책이다.
왠만한 가방엔 쏙 들어갈만큼 책 사이즈가 아담하여 지난 주말 친척 결혼식에 가기 위해 오른 버스안에서
창밖에 지나는 풍경과 함께 읽어보았다.
글씨가 몇 줄 되진 않지만 한참동안 사진을 처다보느라 금방 넘기지 못한 페이지도 있고,
작가의 글을 채 끝까지 읽기도전에 울컥하는 마음에 한참동안 창밖만 바라보게한 페이지도 있었다.
에세이는 가끔 삶의 옳은길 타령이나 허무주의를 찬양하는 글이되어 책을 읽는 도중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이런책은 자신을 책속에 담지 않아 독자로 하여금 충분한 공감을 주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누군가 자신의 글에 '공자님 같은 말씀만 올린다'는 평을했다고 언급한 구절이 있다.
그래서 혹시 옳은길 타령의 책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책내용은 가까이두고 가끔 열어보고 싶을만큼 알차기만 했다.
첫페이지부터가 의미심장하다.
|
자신의 나이를 3으로 나눠봐.
8인데요.
그럼 8시란거지 인생을 24시간이라고 치면말이야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아닐까? 아침에 일어난거야 넌 잠이 덜깬거야
- 아오노 슌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中>
|
내 나이로 따저보니 이제막 정오인 12시를 넘긴 시간.
그렇다. 난 아직도 새파랗고 아직은 바쁜나이.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오후의 일정을 위해 잠시의 휴식이 허락된 시간.
그렇다 난 딱 이런시기에 놓여있다
작가는 첫페이지부터 나를 이렇게 무장을 해제시켜놓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자신을 돌아보며 하는 생각 들을 하나 둘 풀어놓는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흐믓한 이야기가 많다.
비오는날 길가에서 딸을 기다리는 10여분의 기다림이 짜증으로 바뀌는 순간 '어머니가 비에 젖은 손으로 건넸던 그 품속의 떡,
아버지가 말없이 툭 던져주시던 먼 마을 잔칫집 도시락'의 기억으로 생각난 부모님의 마음,
'아내'는 '집안에 있는 해'란 말인 '안해'가 변한 말이라며 결혼기념일날 아내에게 건네는 편지,
딸이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에 제대로 미쳤다며, 무엇에 미쳐본 것이 언제냐며, 열정을 북돋아주는 문장들......
특히 이 부분에서는 '딸아이가 미쳤어요'라며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붙여놓고
아마도 딸인듯한 사람이 피아노 건반의 '미'를 치는 모습의 사진을 곁들였다.

작가는 이렇게 진지함과 익살스러움을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그 외에도 뻥뻥뚫린 연잎 사진 옆에 '그럴수도 있지'라며 오고가는 말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글,
욕심없이 설렁설렁 살자며, 허허 웃으며 넉살좋게 살자며 여유를 주는 글,
불타는 것은 금요일 까지라며 주말엔 충전할 것을 권하는 글......

정말 인생의 정오에 일기 딱좋은,
하지만 인생의 오전에도, 오후에도, 언제라도 우리에게 쉼표를 줄 수 있는 그런 사진과 글들이 가득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