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시민 불복종
변재원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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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변재원 작가가 졸업한 학교, 학과에 다니고 있다. 비록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지만 그가 남긴 싸움의 흔적을 목격했던 경험이 있다. 특히 그가 교내 장애학생지원센터와 관련해 작성한 대자보가 특히 인상깊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나마 우리 학교의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지금의 궤도에 오른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그 대자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처해진 환경을 바꾸어내던 사람이 사회 구조를 바꾸는 활동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과정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는 어떻게 '멋지게 싸우는' 사람이 된 것일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투쟁'을 넘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도전하는 '장애운동'으로 싸움의 근거지를 옮길 수 있었을까. 


#2.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이후 장애 운동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서야 그들의 존재를 인식했지만, 그들은 오랜시간 곳곳에서 투쟁해왔다. "시민들이 장애운동을 '지하철 타기'로만 이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다"는 우려를 넘어서고자, 작가는 여러 영역을 아우르는 운동의 여정을 담아낸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강의실을 위한 자신의 투쟁에서부터, 계단 앞에 좌절하지 않고 맞선 장애인들, 장애인의 노동문제는 물론 코로나-19 시기 장애인 시설의 집단 감염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최저선이 보장되도록 최전선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낸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장애운동이 단순히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기준 하에 모든 것을 재단하는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행위임을 역설한다. 대표적으로 응용 사회과학에 밀려 항상 낡은 강의실에서만 머물던 미학 전공 노교수가 그의 강의실 변경 투쟁 덕에 처음으로 신축 강의동에서 수업한다며 기쁨을 표하는 모습은 아주 가벼운 에피소드임에도 장애운동이 가진 파급력을 깊이있게 보여준다.


#3.

이 책은 장애운동뿐만 아니라 소수자성을 가진 모든 시민이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에 관한 연대기이기도 하다. 소수자성을 당사자이자 활동가로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을 볼 때면 언제나 궁금했다. 소수자성이 곧 활동가로써의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들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운동'의 형태로 표출하기까지의 과정이 말이다. 작가는 운동의 언어조차 낯설었던 자신이 장애운동 단체의 정책국장을 맡게되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드러낸다. 활동가를 직업으로 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독특한 성장과정으로 인해 '운동의 언어'가 전혀 낯설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처음엔 박경석 대표의 단도직입적인 제안으로 시작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활동가로써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키워왔으며 다른 이들과 어떻게 연대해왔는지, 그리고 잠시 그곳을 떠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이 책에 담겼다. 활동가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그 실마리를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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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편의시설을 바꾸는 데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장애인에게 계단은 계단이 아닙니다."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차별의 단면이었다. (…) "나한테 계단은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 같은 거예요, 그건."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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