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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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정훈 작가님의 전작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대기업-정규직-화이트컬러의 직업만을 '그럴듯한' 일자리로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비판들을 통해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던 노동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들을 전복할 수 있었고, 그 이후 노동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노동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들과 직면하게 될까 기대했고, 역시나 흥미로운 지점들을 눈에 띄었다.


#2.

플랫폼노동의 기존의 정규화되고 안정화된 노동을 '유연화'한다는 명목하에 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 저자는 영국의 노동연구자 필 존수를 인용하며 "플랫폼경제와 위탁계약, 건당 임금이 확대되면서 임금이 도박처럼 변하고 있""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한다(p137). 그렇다. 노동이란 기본적으로 양이든 질이든, 애초에 산정된 기준에 부합하게 지급되어야 한다. 급여명세서 제공이 법제화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노동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일일히 계산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AI의 계산법에 의해 지급되고, AI의 복잡한 산식은 인간 노동자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비록 배달노동은 아니고 아주 잠시였지만 플랫폼분야의 노동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경험을 복기해보면 통장에 급여가 찍히기 전까지 나의 임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건당 얼마라는 비용은 산정되어 있었지만, 거기에 작업마다 반려율이나 오류율 등의 퍼센테이지 계산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얼마가 입금되든 나는 그것에 대해 따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듯 "임금의 변동성이 크면 노동자들은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조바심을 품게 된다". (p237) 그로 인해 과적, 과속, 과로를 반복하게 되고 이에 대해 지급되던 위험수당이 곧 기본급처럼 변했다. 위험수당을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소득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배달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을 제안한다. (p237)


#3.

저자는 이 문제를 플랫폼에 속한 이들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배달산업은 우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로를 이용"하기에 "도로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산재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p30). 하지만 그럼에도 "배달기업은 시민들의 피해를 예방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노동자는 안전운전 교육은 커녕 제대로 된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로 위를 달린다"(pp30-31).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플랫폼기업들은 '도로'라는 자신들의 수익모델이자 공장에 대해 어떠한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다. "도로를 깔고 정비하는 것은 국가가, 사고 예방을 위한 단속은 경찰이 한다. 배달 쓰레기는 공공의 세금과 시민들이 감당하고, 교통사고 처리는 배달노동자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pp44)

또한 배달이 지연되는 상황을 돌이켜보면, "손님은 소비자에서 노동자의 작업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매니저로 변신"하고, "덕분에 회사가 노동자에게 빠른 배달을 강요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난과 노동자성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p156). 플랫폼기업이 갖가지 전략들을 활용해 이 질서에서 빠져나가는 사이, 오히려 악역이 되는 것은 시민들뿐이다. '기사님 천천히 와주세요'라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기업이 아닌 소비자의 몫이듯 말이다.

나아가 저자는 기업이 어떠한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 이러한 모습을 배달노동자만의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노동이 점차 세분화되고 유연화되면서 기업도 함께 쪼개지고 유연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책임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시내 곳곳을 달리는 배달노동자들의 모습이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노동자의 미래가 될지 모른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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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배달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기업은 더 이상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임금, 고용뿐만 아니라 산업안전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이 쪼개지고 유연화되는 것만큼 기업도 쪼개지고 유연화되고 있는 주이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빈칸만이 존재한다. 이 빈칸을 채우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이 책이 쓰일 수 있다면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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