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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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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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태국 로맨스물이 꽤 핫하다. 아주 대중적인 취향에 속하거나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몇년 전 개봉했던 <선생님의 일기>는 물론 좋은 평가를 받은 퀴어영화 <러브 오브 시암>, 나아가 최근 국내 커뮤니티들에서 회자되고 있는 각종 BL웹드라마들까지.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이 시기에도, 태국은 한국의 콘텐츠시장 곳곳을 파고들어 여러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그림의 이면>은 이러한 로맨스 강국 태국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인 듯하다. 무려 49쇄를 기록할 만한 태국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그래서일까, 직설적이지 않지만 완곡하고 은유로 넘치는 언어들 속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와 문장들에 눈길이 간다. 닿을 듯 말 듯, 독자를 애타게 하는 놉펀과 끼라띠 여사의 사랑은 2022년까지도 유효한 로맨스의 법칙들을 아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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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그림의 이면>이라는 제목처럼 그림이 주요한 오브제여서일까, 끼라띠 여사의 대사 속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만큼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있다. 끼라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놉펀과 그가 가진 젊음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끼라띠의 대화. 세상의 모든 순간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끼라띠의 태도까지. 작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다층적인 견해들을 풀어낸다. 특히나 20세기 초 태국인들에게 비춰진 일본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그 아름다움에 한층 깊이를 더한다. 현대사의 묘한 운명 속에서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피해간 태국인들이 바라본 제국주의국가의 부흥은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결국 제국주의 위에 세워진 점을 상기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무상한가를 떠올리게 된다. 마치, 그림 한 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끼라띠와 놉펀의 사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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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이 작품은 비련의 로맨스에서 기대하는 다양한 규칙들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작품이다. 2022년의 우리에겐 다소 기시감이 드는 전개일 수 있지만, 이것이 수십년 전의 작품임을 고려하면 이국적인 배경들 속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특히나 "단 일주일 만에 일본에 머물고 있는 거의 모든 태국인이 두 분과 만났다"(p21)고 말할 정도로 일본과 태국의 교류가 극히 드물던 시절, <그림의 이면>이 로맨스의 규칙과 함께 이국의 풍경들을 함께 전해주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당연지사였던 듯하다. 최근 8-90년대 드라마가 유튜브에서 다시 업로드되고 있다. 그 시기의 로맨스물만이 가졌던 감성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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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집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을 때 나는 자문했다. 무슨 이유로 나는 끼라띠 여사의 사생활을 골똘이 고민하고 있는가? 그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어떤 의무나 필요성이 내게 있는가? (...)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 내어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는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 P40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결점과 시듦이 없는 상쾌한 감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지." - P48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가장 의미 있는 것임에 내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가련하도다, 인생이여!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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