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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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원> 이후 백온유 작가의 신작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올 초 창비 스위치를 통해 연재된 <경우 없는 세계> 소식만으로도 설렜는데, 예상을 깨고 완전히 다른 작품인 <페퍼민트>로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 설렜다. 그리고 이 백온유 작가는 나의 설렘과 기대감을 넘어선 놀라움을 선사했다.

  <유원>과 닮은 듯 보이면서도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는 <페퍼민트>는 아주 극단의 상황 속에서 아주 일상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더 정확히는, 나의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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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생의 모든 순간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동일한 일상이 반복된다 한들, 미묘한 차이가 쌓이며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는 그 변화에 맞서면서 적응하고자 노력하지만 또 다시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며 그 노력은 무용(無用)해진다.

  시안의 생활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간병인도 인정할 만큼 프로가 된 시안에게도 엄마의 수발을 드는 일은 여전히 힘들고 낯설다.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이지만 텅 빈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엄마와 밤을 지새는 것도 언제나 두렵고 낯선 일이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시안의 엄마를 보고 충격을 받은 해원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해원의 그 충격은 시안이 매일같이 마주하는 감정일 테니까. 시안과 해원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마주하며 상처를 받지만, 아마 두 사람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일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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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어진 무게를 떨쳐내고 나의 삶을 찾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 곁에서 1분 1초도 떨어질 수 없었던 시안과 아빠는 똑같은 결심을 한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급진적이고 결연한 방법만이 지금 주어진 무게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안은 이 결심에 해원을 이용하려 했고, 계속해서 도망치던 해원은 자신이 가진 무게를 떨쳐버릴 수 있는 방식이 그것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기 직전까지 가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세 사람의 결심은 모두 실패했지만, 족쇄와 같은 무게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전문 간병인의 제안에 의해 생각보다 간단하게 마무리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겨버렸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거대하고 엄청난 희생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의외로 아주 가볍고 홀가분하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존재하는 듯하다. 물론 그것이 완벽히 해방시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도망치기 위해 선택한 급진적인 길은 또 다른 무게감과 죄책감, 트라우마를 가져올 수 있다. 그 실행에 가장 근접해서 처벌을 받는 시안의 아버지처럼 말이다.

  일상을 추동하는 힘이 결국엔 가장 홀가분한 해방에 근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며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에게 식사를 권하는 어르신들의 말이 그저 위로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타개하고 돌파하는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로소 식사 시간을 확보하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난생 처음 지각을 선택한 시안과 해원의 진심 어린 미소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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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빠는 내게 웃어 보였다. 그런 표정으로 애써 나를 달랬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나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책임감을 가지라고. - P110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 P121

"알아. 어쨌든 네가 나에게 엄마를 완전히 맡기고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네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어."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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