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
조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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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몇 년전부터 메일링서비스가 대세다. 물론 뉴스레터나 웹진, '고도원의 아침편지' 같은 컨텐츠들이 존재했지만, 본격적인 대세로 자리잡기 시작한 건 몇 년 전부터다. 특히 기존에 문단이 외면했던 젊은 여성 작가들이 메일링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과 나누기 시작했고,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렇게 한국문학의 판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른바 '경장편'으로 불리던 장르들이 소위 중년 남성 작가 중심의 '순문학'이라는 견고한 장을 깨고 들어왔다. 찬란하게 빛나는 여성 작가들은 한국 문학의 미래이자 현재가 되었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가 메일링(mail-ing), 즉 편지-하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참 흥미롭다. 새로운 지면을 만들기 위해, 여성 창작자들은 새롭지만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편지쓰기'라는 방식을 택했다. 메일링은 독자와 작가 사이의 연결의 감각을 깨워냈고, 이들의 관계는 연대하고 협력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응원하는 '동지'로 자리매김한다.


#2.

조우리 작가의 <이어달리기>는 메일링을 통해 연재되었던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도 서로 다른 이들에게 전달된 장례식 초대장 편지로부터 출발한다. 편지는 책과 사뭇 다르다. 책은 그것을 구입하고 선택하는 독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편지는 그것을 보내는 작가의 행위에 집중한다. 존재하는 이야기를 발견하기 전에 그 이야기로 먼저 다가가는 점에서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정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메일링서비스와 편지라는 스토리, 두 겹의 편지가 만나 더욱 다정한 매력을 뽐낸다. 살아서 하는 장례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한 행사에 초대한다는 설정은 이런 다정함에 경쾌함을 더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런 편지를 받으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 장례식에 참석할까?" "내가 이런 편지를 보내려면 누구에게 써야할까? 편지를 보내면 몇 명이나 참석해줄까?"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3.

<이어달리기>는 하나의 편지를 둘러싼 서로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이다. 하나인 듯 하나가 아닌, 하나 같은 작품이라는 점이 연작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실 연작소설을 볼 때면 처음 했던 생각은 '장편이면 장편이고 단편이면 단편이지, 연작은 뭐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짧았던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때로는 장편같고 어떤 면에서는 단편같은 연작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 더 많이 닮아있는지 모른다. 나의 세계의 주인공은 나고,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다른 이의 삶은 그 사람의 시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구상의 인구가 70억 쯤 되니 70억명이 각자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 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서로가 서로의 주연이 되고, 조연이 되며, 악역이 된다. 이렇게 층층이 쌓인 이야기의 겹들이 마침내 세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연작소설을 만들어내는 듯 하다. 지금은 내가 주인공이지만 누군가의 이야기에선 그저 스처지나가는 단역이 될 수 있다는 삶의 진리. 연작소설은 그 진리를 담아낸다.


"이모, 나 미션 완료했어."
"그래? 어떤 보상을 주면 좋을까. 원하는 걸 말해봐."
아름은 기꺼이 대답했다.
"이모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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