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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1.
뇌전증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스벤과 가족들이 겪은 강도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심리적인 가장이 되어버린 파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움으로 인해 세상에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둘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첫만남을 가진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현재 스벤의 도우미견이자 과거 파커의 가족이었던 알래스카가 있다. '알래스카는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라는 경쟁심리에서 시작된 둘의 애증은 우정으로 변하고, 위기 속에서 서로를 도와주고 상처를 보듬는 친구가 된다.
#2.
두 사람의 상처를 조망하는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매우 불친절하다. 두 사람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다보니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엄청난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생각을 보여주기에는 아주 적절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혼란스러운 성장 속에서 '공포로 가득한' 이 지구가 아닌 자신의 특이함을 보듬어줄 '화성'을 꿈꾸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둡지만, 엉뚱하고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파커가 발작으로 힘들어하는 스벤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는 그 엉뚱함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파커의 마음씨에 가슴 한 켠이 찡해지기도 한다.
#3.
누구에게나 삶의 공포가 존재한다. 너무도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그 공포는 단순히 심리적 문제만은 아니다. 언제든 범죄와 혐오의 형태로 우리를 덮쳐올 수 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누군가에게 '겁쟁이'라거나 '나약하다'는 식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포의 원천이 어디인지, 공포를 잊기 위해 마음 속에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그리고 공포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폭력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하찮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가족이 겪은 범죄의 피해를 찾아 나서는 파커의 절박함처럼.
태어날 당시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땐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홀딱 벗겨진 채로 누워 있었을 것이다. 전혀 모르는 얼굴, 전혀 모르는 손, 전혀 모르는 코털 아래에서. 어쩌면 그래서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빽빽 울어 대는 건지도 모른다. - P6
잠깐의 뇌신경 합선이 지나간 후, 내가 다시 온전하게 돌아와서 저러는 거라고 했다. 이본 조련사님은 알래스카와 내가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고, 그러니까 둘 사이에 텔레파시가 통하는 거라고 판단했다. 발작이 진행되는 동안 그 유대 관계 또는 텔레파시가 잠깐 끊어지는 거라고, 도우미견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주인이 더 이상 깨어나지 않는 것이란다. - P149
동영상이 점점 더 많이 올라온다. 우리반 애들이 이렇게 정신 나간 애들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콘센트 옆 거실 바닥 한구석에 앉아 있다. 휴대폰을 계속 충전해야 하기 때문에. 동영상이 하나씩 도착할 때마다 아이들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예쁠 필요도, 평범할 필요도, 완벽할 필요도 없다. 오늘 저녁 6학년 2반은 전부 화성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거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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