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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평점 :
#0.
우리는 매일 쌀을 먹고 살아간다. 쌀 소비량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쌀은 우리의 주식이고, 밥은 한국인들에게 열량 섭취의 대상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철승 교수님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수많은 문제들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 쌀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게 너무도 가까운 쌀. 우리가 겪는 문제의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1.⠀
"우리는 흔히 역사를 단절과 격변으로 점철된, 역사적 국면마다 구체제가 청산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책이 그렇게 '사건'을 중심으로 장이 나뉘어 서술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역사의 주체인 민초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는 격절이 아니다. 앞의 다섯 번의 격변을 통과한 산업화 세대는 동일한 주체들이다."(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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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금 우리에게 과연 세대론이 유의미할까? 세대를 나눈다고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같은 사회를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게다가 너무도 급변하고 다양화되는 사회에서 세대론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목소리의 힘을 무시해버린다. 어설픈 거리두기와 편가르기보다는 같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 책의 사회불평등 탐색도 여기서 출발한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시공간속에서 살아가고 같은 사회에서 '쌀농사'로 비롯된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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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동생산과 사적소유"라는 쌀농사의 아이러니한 특성이 가져온 공정성에 대한 집착과 불평등의 문제. 이철승 교수님은 이 아이러니를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계층 문제들을 설명해나간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기본소득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기본소득은 '너무도 복잡하고 정보화된 네트워크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돈을 벌고 누가 누구의 경제활동에 기여하는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 논의이기도 하다. 이미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는 것이 진리처럼 입증되는 정보화사회는 새로운 시대의 출현이 아니다. 이 문제는 이미 쌀농사 시대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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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각해보면 한국은 쌀농사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쌀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지역은 우리보다 훨씬 기온이 높고 일정하며, 2기작-3기작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1년에 1번의 농사만 가능하며 연교차도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쌀에 대한 사랑만으로 쌀농사를 발전시켰고 쌀이 남아 도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한국인이 극한 상황에 강하다는 것은 쌀농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인구나 면적 등의 문제로 내수시장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는 곳에서도 산업화를 이뤄내고 경제성장을 이뤄낸 특이한 나라. 극한에서의 쌀농사로부터 체득된 위기 대처 능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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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쌀농사 국가인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은 점점 밀농사 지대인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어떨 때는 더욱 익숙해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1인당 쌀 섭취량은 점점 줄어들고 밀 섭취량이 그 감소분을 채우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에서 쌀농사 지대의 전통적 가치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것은 쌀 섭취량 감소와 쌀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마을의 누군가는 다른 방식의 파종법을 시험할 수 있도록 공동노동의 표준화 과정에서 제외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한반도에서 이앙법 실험은 실패했을 것이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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