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계절
임하운 지음 / 시공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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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연령 낮은 고딩들. 모두가 그저 그런 일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흉내내거나 막장 드라마 속 캐릭터를 흉내낸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졸작이다. '졸작'이란 평조차도 이 책에는 과분하다. 아무 중·고등학교 교내 글짓기 대회 동상도 이 책보다 훨씬 낫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에는 폭소와 한숨이 나온다


"내가 말했지, 내 사람 건드리지 말라고." (이 책, p. 189)


"넌 네 사람은 어떻게든 지킨다고 했지? ……그럼 별이 그만 힘들게 해. ……똑바로 들어. 난 강별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내 사람 건드리지 마." (p. 145)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말할게. 나루 안 만났으면 좋겠구나." (p. 164)


옛날 귀여니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이 책에서 읽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의 주인공 반윤환은 자기만 빼놓고 놀이공원에 간 가족에게 삐진 애마냥 굴더니("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반장이랍시고 그 어쭙잖은 책임감 때문에 걱정되는 거면 네가 나가서 찾아보든가." p. 75) 갑자기 병 걸린 개구리라도 삶아 먹었나 느닷없이 여태까지의 자기의 행동을 반성하고 사회적인 인간이 된다("나는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반장이 학교를 못 나오게 된 것에 내 책임이 얼마만큼 있는지 생각했다. 분명 내 말 때문이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관해 보이지는 않았다.",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뼛속 깊이 느껴본 적 있었다. 1분 1초가 괴로울 정도로 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지나루를 떠올렸다. 차라리 내게 욕을 했다면, 화를 냈다면 조금은 괜찮았을까?", p. 87, 110). 


세상에 금을 긋고 "금 바깥에 잇는 것들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시크병에 걸린 애송이마냥 주절거리던 인간이 갑자기 wee센터 심리상담 선생님이라도 된 것마냥 등장인물들의 인생고민을 들어준다. 강별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얘기(p. 86), 윤건의 인생고민(p. 270), 강은비가 비행청소년이 된 계기(p. 224), 지나루의 친구 문제(p. 184), 심지어 진짜 또래상담사가 되어 지나루와 강은비를 화해시킨다(p. 228).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단서로 볼 만한 건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다(p. 105), 약속시간이 지나 늦게까지 자기를 기다리던 지나루에게서 집 나간 엄마를 그리워 하는 자기가 떠올랐다(p. 110), 강간범인 아버지 때문에 놀림받다 자살한 전썸녀 이하은(이 책은 스포일러 방지를 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다)처럼 되게 하지 않겠다(p. 194)는 건데 작가는 정말 이걸로 심리적 개연성을 메꾸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 걸까? 

작가 임하운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데 이 책의 주인공 반윤환은 그럴 만한 순수한 성격이 못 된다. 이 책에서 반윤환은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집적대면서 하렘을 구축하는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강별에게 집적대고("나는 들고 있는 약 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아무 대꾸 없이 약 봉지만 건네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네가 이러는 거 알면 걘 더 힘들어할 거 같은데?", p. 88, 146), 지나루에게 집적대고("……지나루는 객관적으로 예뻤기 때문이다. ……그때 영화 못 봤던 거, 이번 주에라도 볼래? ……네가 시간 괜찮다면.", p. 106, 146), 심지어 유령 이하은에게도 집적거린다("노래를 틀고, 이어폰 한쪽을 그 아이에게 줬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세계가 어두워졌고,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그 아이가 내게 등을 기대고 있었다. 이 세계에 이하은과 나, 둘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p. 52). 


임하운 작가(작가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상황과 상처를 끌어안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p. 279)고 하나, 이 책에서 그런 휴머니즘 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불쌍한 개인사에서부터 시작하는 심리적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사건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듯이 하지만, 정작 그려낸 것은 작가 임하운의 연애망상이다. 


그러니 이 책 겉표지가 광고하는 것 같은 '지금까지 없던 솔직한 언어' 따위는 없다. '독특한 시선'도 없고, '새로운 감성'도 없다. 저자는 재능이 없다


한껏 칭찬해줘야지 작정하고 읽었지만, 칭찬할 것이 하나도 없다. '90년대생이 온다'고 세상은 난리법석인데, 고작 이게 '90년대생의 작품'이라니 자괴감마저 든다. 90년대생 수필가 이슬아가 상상 속에 자신을 처 박아 가상의 이슬아를 현실의 이슬아로 만들어 자기를 기만한다면, 90년대생 소설가 임하운은 현실의 임하운을 가상의 임하운으로 만들어 남을 기만한다.


폭소와 자괴감을 왔다갔다 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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