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블루레이] 언어의 정원 (16p 설정집) - 한국어 더빙 수록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리노 미유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언어의 정원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난 언어의 정원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모두 신카이 마코토라는 감독 때문이었다. 그의 전작(지금에서는 내가 본 작품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그 작품)에 깜짝 놀라며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감독이 있었어?’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기대감을 마음에 품고 있었음에도 영화는 좀처럼 보지 못했다. ‘이야기’를 좀처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내 상태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았다. 개인사는 이제 각설하고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적어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두번이나 봤으니 영화 이야기는 좀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 ‘순간’을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만엽집의 단가였다. 그 애절한 시구.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읇었던 단가는 아래와 같다. 


천둥소리 희미하게 울리네. 구름이 껴서 비라도 와준다면 당신은 여기 있어줄까?

천둥소리 희미하게 들리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난 여기 있겠어요. 당신이 붙잡는다면


단가 속 상황을 그려보면 우중충한 날씨에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연인은 내게 말한다. ‘비가 오면 좋겠어. 그럼 네가 가지 않아도 되니’ ‘시’였기 때문일까? 난 왜 이 한마디에 멈춘채 한참을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몇번이고 되물어 보았다. 하지만 알맞은 답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겨우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상 언어에서 시는 그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고, 입 밖으로 그 시 언어가 내뱉어지는 순간 내가 속한 현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미 ‘우린’ 환상속에 속해버린 것은 아닌 것일까 하고 말이다. 


참으로 사소한데 집착하는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핀잔을 주면서 두번째 영화를 보는데 무심코 넘겼던 영화제목이 떡하니 내 눈에 띄었다. 제목의 한국식은 바로 ‘언어의 정원’ 이걸 일본어로 쓰면 ’言葉の庭’이다. 근데 떡하니 ’言の葉の庭’로 써 있는 것이 아닌가. 응? 言の葉? 뭐지, 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言葉와 같기도 하지만 和歌도 된단다. 和歌는 일본 고유 형식의 시란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가다. 신카이 마코토는 단가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시작도 알 수 없는, 알지못하는 단가에 대한 집착이 좀 편안해졌다. 


영화를 보면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 몇가지가 있다. 그 중에 두드러진 것이 구두와 물이다. 구두는 집에서 밖으로 향할 때 몸에 갖추는 마지막 물건이다. 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집에서 사회로 나아갈 때 우리는 구두을 신고 걷는다.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대상물인 구두.

여자주인공(이후 유키노)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신을 신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녀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다.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고 가끔 그녀가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도 그녀를 버린 사람 중 일부일 뿐이였다. 그녀가 동경하는 세계의 사람. 

남자주인공(이후 다카오)는 구두장이가 꿈이다. 철부지 엄마를 둔 덕에 일찌감치 어른이 된 다카오. 다카오는 가족이 아닌 사람(유키노)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꿈이자 목표를 고백한다. 다카오에게 꿈은 왜 구두장이가 된 것일까. 정자에서 꾸는 그의 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꿈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 세 남자(아버지, 형, 동생)가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구두를 선물한다. 그가 그리워하는 공간의 중심에 구두가 있는 것이다. 구두가 다카오을 완성시키는 대상물이 된다.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 다카오에게는 ‘구두’이다. 


두번째는 물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이 무척 많이 등장한다. 단가에서의 상황도 비를 그리워하는 만큼 두 주인공이 만나는 상황이 바로 비가 오는 날이다. 줄기차기 등장하는 비는 제쳐두고 내 눈길이 간 것은 ‘물 그림자’이다. 물 그림자하면 나는 유독 우물이 떠오른다. 우물을 한두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물 그림자는 우물 안, 저 밑에 물이 보일락 말락 어둠 속에 있고 우물 벽 쪽으로 일렁대는 물 그림자가 보인다. 이런 생각 속에서 내게 물 그림자는 폐쇄성을 떠오르게 한다. 예를 들어 투명한 컵에 담긴 물에 빛을 비춰도 쉽게 물 그림자를 볼 수 있는데 그림자를 만드는 물은 갇혀있다. 영화에서 물 그림자는 세번에 걸쳐 나온다. 모두 유키노의 마음을 대변하는데 처음은 정자에서 자신의 모습에 속상하고 불안해 하면서, 두번째는 유키노의 방안에서 다카오에게 고백을 받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세번째는 계단. 다카오에게서 독설을 들으면서 계단을 가득 채운 물 그림자를 볼 수 있다. 과연 그녀는 갇혀버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햇볕이 그림자를 물리친다. 그 순간, 다카오는 유키노에게 선물하고자 했던 신발을 선물할 수 있었다. 비로서 그녀는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면 매번(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자꾸 신경쓰게 되는 것이 정밀한 배경일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은 분명 현실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다. 현실의 세밀한 표현임에도 결코 현실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가 오는 날은 그렇게 밝고 선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현실을 무척이나 아름답게 표현했다. 나는 이러한 표현들이 신카이 마코토가 우리가 속한 이 현실, 이 공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기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하고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줄곳 아름다움을 찾지만 우리가 마주한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말이다. 


요즘 영화를 보면 런닝타임은 자꾸 길어지는 추세이다. 1시간 반이라는 시간에 혹은 2시간이라는 시간 안에도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기에는 모자라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4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온전히 전달하는 신카이 마코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서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