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 유럽 근대의 뿌리가 된 공자와 동양사상
황태연.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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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자孔子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고? 불과 100여 년 뒤 선교사들이 남긴 글과 사진들을 보면 조선은 가난과 질병에 찌든 미개한 나라였다. 공자사상이 지배해온 동아시아의 형편이 거의 다 그랬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공자철학의 역할이 전혀 달랐다. 그간 우리가 공자를 너무 오해해왔던 것이다. 동서양 철학사에 정통한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황태연 교수와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김종록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는 이를 증명하는 사료들로 가득하다.

 

“경전의 첫 번역집이 유럽에 출현한 그 순간부터,

공자철학은 유럽대륙의 식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색의 불꽃을 지피는 번갯불 지팡이가 되었다.”

_미국 노트르담 대학 문화학과 교수 라이오넬 젠슨


독일의 유명 철학자 볼프가 추방당한다. 공자를 예수 반열에 올려가며 중국을 예찬한 연설문 덕분이다. 대학에서 파문당하고 조국에서 쫓겨난다. 볼테르가 비분강개한 이 사건은 결국 독일 계몽주의의 신호탄이 된다. 미적분의 창시자 라이프니츠도 공자철학을 인류 발전의 섭리로 이해하고 유럽에서 중국으로 기독교 선교사를 보낼 게 아니라, 유럽의 추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공자 선교사를 보내줘야 한다고 개탄한다. 중국을 몹시 싫어한 몽테스키외와 공자 숭배자 볼테르 간의 치열한 접전, 사마천의 ‘자연지험’과 이름만 다를 뿐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유럽의 공자’라 불린 경제학의 창시자 케네, ‘무위無爲’사상을 통해 유럽 최대 빈국에서 지상낙원으로 변모한 스위스 등 놀라운 사실들이 텍스트와 지면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금껏 서구 콤플렉스에 빠져 서구 지향적 삶을 살아온 동아시아인들에게는 18세기 공자가 유럽 사상계에 일으킨 한바탕 소동만큼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들은 책 후반부에서 독자라면 품을 직한 마지막 궁금증, “그랬던 동양이 왜 개화기를 거치며 서구에 참패당하게 되었다지?” 그 이유까지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공자가 고리타분한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21세기 서구 합리주의의 병폐를 치유하고 보완할 대안철학임을 논증한다. 부록 같은 <책 속의 책>에는 공자철학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공자철학의 뿌리와 세계관을 쉽게 정리했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딱 좋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통쾌함과 자부심이 밀려왔다.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의 추천사처럼 이 책을 통해 서구 콤플렉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 세계무대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되고 변용되어, 부정적이기만 했던 공자의 심장을 훔친 기분이다.

 

 

공자는 선지자가 아니고, 조금도 계시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현자로서만 글을 썼고, 중국인들도 그를 현자로서 존중한다. 그의 도덕은 순수하고 엄격하며 동시에 인간적이기도 하다. … 공자는 용서, 사은謝恩, 인애, 겸손을 촉구한다.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은 사해가 다 동포임을 과시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시대는 바로 사람들이 공자의 도를 따르는 시대였다.
-볼테르 《국민의 도덕과 정신에 관한 평론》(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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