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부터 시작하는 주식투자 - 우리 아이 선한 부자만들기 프로젝트
백동재.백남정.동재엄마 지음 / nobook(노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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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엄마도 성함이 있으실텐데, 성함이 아니라 동재엄마라고 표기된 것에 실망스럽습니다. 백남정 님도 동재아빠로 표기하시거나, 두분 다 성함을 쓰셨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쉬움부터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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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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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자존심이었다.

 

괜찮은 척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쎈 척하고 쿨한 척했다.

 

사실은 아니었다.

 

맞으면 아팠고, 혼나면 억울했다. 누군가의 화를 받아낼 때는 무서워서 심장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아닌 척했다. 안 아픈 척, 담담한 척.

 

덕분에 나는 창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자존심이었다.

 

친구가 나보다 다른 아이와 더 친해 보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질투가 났었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텅 빈 가슴 속을 누가 손으로 마구 휘젓는 기분을 느끼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래도 나는 그들 앞에 서면 웃었다.

 

난 괜찮아. 나 때문에 부담 가질 거 없어. 난 신경 쓰지 마.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아.

 

그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 때는 몰랐다.

 

질투, 그리움, 슬픔, 분노, 두려움, 수치심

 

나는 이런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드러내는 순간, 이런 감정을 들게 만든 상대에게 내가 지는 기분이었다. (한 때 유행했던 '부러우면 지는 거야.' 라는 말에 얼마나 공감했는지 모른다)

 

남에게 보이기 싫어 뚝 떼어 버리고 싶은 감정들이었으나 이것들이 어찌나 질긴지, 아무리 잡아 뜯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가렸다. 아무도 볼 수 없게.

 

가짜 이해심으로. 가짜 배려심으로. 가짜 용기로. 가짜 웃음으로.

 

 

 

누구 못지않게 가슴속은 슬픔과 기쁨과 아픔과 분노로 소용돌이쳤다. 미르처럼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 있고 자신처럼 남들에게 자기감정을 낱낱이 드러내는 게 싫은 사람도 있다. 엄마도 나와 같은 성격이라 지금 저토록 차분한 걸까.

소희의 방_닮은 그림 찾기

 

 

엄마도 지금 그런 거다. 나는 엄마를 잊고 살았지만 엄마는 그동안 어미 원숭이처럼 슬프고 고통스러웠겠지. 딸을 다시 만난 지금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면서 엄마의 말문을 막고 있는 거야.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엄마의 침묵에 짓눌리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먼저 말을 걸려고 속으로 연습까지 하다가 그만둔 소희는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서라고, 소희는 생각했다.

소희의 방_망각의 강

 

 

엄마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우진에게만 시선을 맞추었다. 소희는 엄마가 선글라스로 피하려던 게 햇빛이 아니라 자신의 눈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세 번째 만났는데도 여전히 처음인 양 어색한 게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관계가 가까워지려면 어느 쪽이든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야 한다. 소희는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희의 방_먼 여행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어린 자신을 할머니네 두고 떠났다는 엄마. 재혼했다는 엄마.

 

소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작은엄마 집에서 지내다 갑자기 엄마와 다시 살게 된다. 소희는 자신에게 무뚝뚝한 엄마를 이해해보려 애쓴다. 가짜 웃음으로 자기 감정은 가린 채. 심지어 엄마의 태도에 대해 자신을 탓한다.

 

소희가 펑펑 울게 해주고 싶다고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으면서 생각했었다. 아픈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며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어른스러운 소희의 모습에 속으로 마음 아파하며 '그러지마'를 얼마나 외쳤나 모른다. 아마 그 외침은 아주 오래 전, 엄마를 그리며 밤 잠을 못 이루던 아이에게도 가 닿았을 거다.

 

소희의 방 초입은 여전히 나를 속상하게 했다. 이 아이는 일찍 철 든 아이, 착한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에 더하여 엄마와 친해지기 위해 붙임성 있는 아이까지 되려고 한다. ....

 

답답한 건 소희 엄마도 마찬가지다. 어쩜 두 모녀가 똑같이 감정 숨기기의 고수인지.

 

선글라스라는 아이템은 감정을 보여주는 두 눈을 가리기에 매우 안성맞춤이지 않은가.

 

뒷좌석의 딸이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지, 보고 웃으면 되지, 그렁그렁한 눈물 보이는 게 뭐 어때서.

 

 

자신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 소희 엄마는 재혼한 남편의 폭력까지 용인한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을 문제 삼았다가 그 하나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균형을 잃고 무너질까 두려웠을까. 그런 태도는 소희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을 때도 보여진다. 모르는 척 해준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바로 그 점이 소희를 화나게 했다.

 

 

엄마라면 딸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때 물어봤어야 했다. 알고 있음을 밝히고 따끔하게 야단쳤어야 했다. 모른 체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치는 엄마에게 소희는 거짓말을 했다는 부끄러움보다 화가 치밀었다.

소희의 방_족쇄

 

그리고 걷어치운다. 가짜 웃음과 가짜 이해심, 다시 버려질까 두려워 소희의 진짜 마음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214-215페이지에 걸쳐, 소희는 마음을 쏟아내고 나는 눈물을 쏟아냈다.

 

 

소희의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말들이 튀어나와 엄마에게로 날아갔다. 가시들조차 지탱해 주는 힘이었는지 그 말이 떠나간 자리마다 휑한 구멍이 생겼고 그 사이로 찬 바람이 불었다.

소희의 방_족쇄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하실까. 마치 내 가슴에 구멍이 생겨 찬바람이 지나가는 듯 했다.

 

 

9월에 접어들며 해가 짧아져서 7시만 되도 어둑어둑하다.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아이가 발을 구를 때마다 바퀴 속 LED등이 눈에 띄게 빛을 뿜어냈다.

 

", 불빛 멋있다. 저 끝까지 다녀와 봐."

 

나는 높은 담벽이 서있는 단지 안쪽을 가리켰다. 가로등이 없는 단지 안쪽은 금방 밤이 될 것처럼 컴컴했다.

 

"알았어!" 빨갛고 노랗고 파란 불빛이 번쩍번쩍, 쌩하니 굴러간다 싶더니 금새 꺼졌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말한다. "엄마, 같이 가자."

 

 

", 그냥 갔다 오지. 무서워?" "."

 

 

. 이라는 답이 나오는데 0.1초도 걸리지 않은 아이가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정말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아직까지 자기감정을 말하는데 솔직한 편이다. 강아지를 보면 온몸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뒤로 숨기 바쁘다. "아 귀엽다. 귀여운데 무섭다." 하면서.

 

만약 아이가 무서운 감정을 가짜 용기로 가린다면 어떨까? 가린 것을 모르면 위로해 줄 수 없을 것이고, 알면 걱정될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자기감정을 숨길까봐.

 

나는 무섭냐는 질문에 바로 응. 이 나오는 내 아이가 다행스럽고 고맙다.

 

아이의 감정을 알면 적절한 반응을 해줄 수 있다. 아이 또한 그럴 것이다. 엄마의 감정을 알아야 반응을 할 수 있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났는데 입 꾹 다물고 참고 있어봐야 아이는 모른다.

 

이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된다. 감정 가리기는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악화되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질투, 그리움, 슬픔, 분노, 두려움, 수치심...

 

남에게 보이기 싫어 뚝 떼어 버리고 싶은 감정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에게 보여야 떼어낼 수 있다. 제 손으로 아무리 잡아 뜯어봐야 소용이 없다.

 

소희와 엄마는 서로의 감정을 가렸던 장막을 걷어치운 후에야 비로소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고성과 눈물이 오갔다 해도. 그런 것은 쌓여있는 감정이 썩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 엄마한테 못 할 말이 뭐가 있어. 그동안은 일찍 철든 게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어. 애들이 부모 속 썩이고, 반항하고, 형제들하고 싸우는 시간도 다 약정 시간에 있는 거야. 너희 때는 그게 당연한 거야

소희의 방_약정시간

 

가출한 소희에게 건네는 고모의 말에서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어린 소희 어깨 위에 가당치 않은 짐들을 올려놓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는 작가님.

 

소희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이 작품으로 열어 보이시며 편안해지셨기를 바라본다.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소희의 친구들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채경이, 가윤이, 지훈이, 준영이.. 십대들의 사랑과 우정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귀여운 우진이와 우혁이를 볼 때면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혜성처럼 나타나 이 가족의 문제를 짚어준 리나. 그런 언니가 생긴 소희가 부럽다.

 

일관성 있는 캐릭터의 성격이 인물들을 더 잘 이해하게 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 것 같다.

 

 

문제(?)가 해결된 소희를 보내주고 나니 바우와 미르가 생각난다.

 

달밭마을에서 떠나는 소희와 작별 인사를 하고 남은 아이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오늘 당장 <숨은길찾기>를 꺼내들어야겠다.

 

 

 

*해당도서는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깊이 읽고 제 자신의 이야기와 진심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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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길 찾기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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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생 아이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함께 읽기를 해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강렬하게 든 생각이다.

 

온라인 독서모임을 몇 년 째 운영해오면서 '이야기'가 가진 힘을 실감한다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감정이 이입된 독자는 그를 친밀하게 느끼고 그의 생각을 자연스레 경청하게 된다. 그의 생각이 평소의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독자는 그 인물에게 닥친 상황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기에, 인물의 입장에서 이해심을 발휘하기가 쉽다.

 

그런 점이 중학생 아이와 부모가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창구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매개로 아이와 부모가 평소 나누기 어려운 깊은 내면의 대화를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팀을 짜서 해볼까? (과연 아이가 동참해줄지 의문이지만;;)

 

생각만으로 두근두근하다.

책이 매개가 되었을 때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수차례 경험해보았기에...

 

<숨은 길 찾기>는 그런 면에서 나를 설레게 했다.

각자의 꿈을 찾고 지켜내는 세 주인공, 미르와 바우와 재이가 우리 아이들의 진짜 마음 속 숨은 이야기를 꺼내도록 도와줄 것 같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부모는 나와 같은 부모의 입장을 대변해 줄 것 같다.

 

미르는 자존심이 센 아이다. 그러나 시골 학교에 다니는 현재 상황,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자신감이 꺾여있는 중이다. 학원이 아니라 개인과외를 받고 방학엔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에게 꿀리기 싫어서 자신의 꿈은 뮤지컬 배우라고 말해버린다. 그리고 뮤지컬 학원에 등록을 한다. 꿈을 이런 식으로 시작해도 되는 걸까?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고 지기 싫은 오기로 말이다. 나는 내 아이와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세 아이 중 유일하게 양친과 함께 사는 재이. 서울에서 달밭마을로 온 가족이 이사를 온 재이에겐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에 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상처가 있다. 그럼에도 밝고 씩씩하고 사교적인 재이는 현재 달밭마을 중학교 연극부의 부장이다. 없는 동아리를 만들어내 학교의 지원을 받을 만큼 리더십도 있는 재이는 바우를 좋아한다. 하지만 쉽게 고백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신중히 들여다보고, 가까이에서 바우를 차차 알아간다. 자신이 잡아당길 경우 어쩔 수 없이 끌려올 것 같은 바우의 성격을 존중한다. 결국 바우는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갖고 용기를 내어 진심을 표현한다. "나는 네가 재이와 바우같은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 자기 마음을 좀 더 신중히 살펴보고 상대방이 마음을 여는 속도와 상대방의 성격을 존중하는 사랑. 그리고 상대방이 삶을 대하는 방식과 꿈을 지지하는 사랑."

내 아이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는 내 아이가 한 순간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보다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과 천천히 사랑이란 감정에 녹아들기를 바란다. 재이와 바우는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의 마음을 대변해줄 좋은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조용하다 못해 답답한 바우지만, 확실하고 뜨겁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 바로 정원을 가꾸는 것.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우는 식물이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줄 때 바우는 뿌듯하다. 문제는 그 일이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도 내 아이의 의견을 듣고 싶다. 너는 보편적 성공과 개인적 만족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니? 묻고 싶다. 둘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에 대한 답은 없다. 그것 역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니까. 나는 다만 내 아이가 가진 생각이 궁금하고,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바우 지지자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달리 보편적인 성공을 중요하게 여긴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 가겠다는 길을 막아설 생각은 없다. 다만 질문은 계속해서 던지고 싶다. 그 길이 왜 좋은지. 그 길에서 궁극적으로 네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바우는 그 질문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가진 아이다. 나도 내 아이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자기만의 답을 갖기를 바란다.

 

소신을 갖기를 바란다.

신중에 가장 만나기 어려운 신이 소신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내 아이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다른 부모들과도 함께 나눈다면 어떨까. 좀 더 다양한 가치관과 다양한 입장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느티나무 기둥에서 뻗어나간 가지 같은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아이들과 부모들과의 대화는 소신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희망에 젖어 본다.

 

 

얼마 전 직장동료의 차를 내 아이와 함께 탄 적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내 아이를 보며 "이것도 한 때다. 사춘기 되 봐라. 문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아. 나는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다니깐." 한다.

웃으면서 "그러려나요?" 하면서 속으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사춘기는 오히려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은 사춘기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와 어떤 관계이냐, 집 안의 사정이 어떤가, 또 각자가 속한 학급의 분위기나 친구 관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간혹 같거나.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그것을 아는 것에서 소신은 시작된다. 타인의 입장이나 타인의 생각을 모르는 채로 나 혼자만의 생각을 믿는 것은 소신이 아니다. 책을 매개로 여러 갈래의 다른 생각을 알고 그 중 나와 뜻이 맞는 길을 택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칠수록 각자의 소신은 그 모양을 제대로 갖춰나갈 것이다. 나는 그 일을 돕고 싶다. 바우가 식물이 자라는 일을 돕듯이. 그러고 보니 보육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 독서모임을 꾸리고 이끄는 나, 블로그에 서평을 쓰는 나, 작가가 되고 싶은 나가 결국 하나의 몸통에서 나온 부캐들이다. 목적이 같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들의 생각이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그러니까 옳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바우와 이금이 작가님의 닮은 면도 보인다.

바우는 식물을 잘 자라게 하는 일을 하고, 작가님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잘 자라게 하는 글을 쓴다.

 

어쩌면 소설가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소설 속 인물의 입을 통해 세상에 건네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서모임에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슬로리딩한 인연으로 작가님을 만났고, 그 연이 계속 이어져 내가 속한 카페 회원들과 이 책의 서평단도 꾸리게 되었다. 비록 무료로 받은 책이나 우리 서평단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읽고 진심을 다해 서평을 썼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2021103, 서평단과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전에 바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아동청소년 문학가로서 작가님의 위업을 느끼게 되어 기쁘다.

 

싹에 물을 주듯 아이들에게 좋은 글, 옳은 글을 주시는 작가님.

세월이 지나 달라진 세태를 반영해, 그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이미 쓴 책을 고쳐 쓰시는 개정판 작업에도 정성을 들이시는 작가님.

 

작가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자꾸 더해진다.

 

 

<마음이 동한 문장들>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꽃과 나무들 앞에서 바우는 그동안 애지중지하며 식물을 가꾸었던 일이 허탈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여기 있는 것들은 영원히 시들거나 죽지 않는, 이별도 소멸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꽃은 지니까 예쁜 것이고 벌 나비가 날아들어야 진짠 거지, 천년만년 피어 있고 벌 나비도 못 받는 게 암만 예쁘면 뭔 소용이야."

 

 

+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잖아. 어떤 사람들 눈엔 엄마가 여기에서 썩고 있는 걸로 보일지 몰라도 엄마는 서울 병원에 근무할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보람 있어. 그런 것처럼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보다 무엇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 미르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하려면 먼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함을 깨달았다.

 

 

+ 어른들은 아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믿을 필요가 있다. 자기에게 닥친 일인데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결정이나 판단에서 소외되고 제외되는 것, 진짜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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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해마 그림 / 밤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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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미르, 소희, 바우

 

"우리 사촌오빠 있잖아요, 엄마랑 아빠가 이혼했대요. 그래서 오빠는 엄마랑 산대요."

 

 

여름방학이라 집에 놀러온 조카 아이가 과일을 깎는 내게 다가와 대뜸 이야기한다. 왜? 물으니 몰라요. 하더니 잠시 있다 덧붙인다. 중국 사람이라 말이 안 통했나?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말이 안 통하니 마음도 안 통했을 지도.

 

이제 열살인 그 아이는 부모님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얼마 전에는 아내 없이 아이를 키우던 50대 후반 남성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암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이제 중학생인데 혼자가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울지도 않고 멍하니 있었다던 아이. 남겨진 재산보다 채무가 많아 상속 포기까지 해야 했다던데. 이제 어디에서 누구와 지내게 될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처음 이사온 날, 앞집 아주머니 아저씨의 초대를 받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한 아이가 들어오며 인사를 하는데 두 분의 아이라기엔 많이 어려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눈으로 쫓으며 살폈던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주머니가 먼저 말씀하셨다. 조카인데 사정이 있어서 데리고 있다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계단에서 만나도 언제나 고개를 숙인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어깨를 움츠리던 아이. 어느날 부턴가 보이지 않는데, 부모님께 간 걸까. 잘 지내고 있을까.

 

 

달밭마을에서 소희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덮은 뒤 남아있는 여운을 가슴에 담아둔 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미르, 소희, 바우가 떠올랐다. 그 아이들의 마음을 미르와 소희와 바우라면 위로해줄 수 있을덴데. 부모를 이해하기 힘든 아이도, 이해할 부모조차 없는 아이도, 늘 움츠린 채로 있던 아이도 미르와 소희와 바우를 만나면 흙바닥에서 엉덩이 툴툴 털고 일어나 걸어나갈 힘을 얻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이겨낸다.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르가 엄마와 함께 달밭마을로 이사온 후의 이야기가 1장 미르의 관점, 2장 소희의 관점, 3장 바우의 관점에서 시간순으로 전개되고 4장은 모두의 이야기이다.

 

세 아이 중 나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긴 것은 소희였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던 아이.

 

소희는 일기장이 두 개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검사받는 일기장 외에 비밀 일기장이 하나 더 있었고, 그 곳에 소희의 진짜 마음을 써내려갔다. 미르에 대한 첫인상부터 질투심. 자신에게는 없는 것과도 같은 부모님에 대한 생각. 건강이 악화된 할머니에 대한 걱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 남겨질 것을 더 무서워하는 마음. 그에 따른 죄책감까지.

 

솔직하면서도 깊은 그 아이의 속이 무척이나 어른스러웠고, 그 점이 안타깝고 애처로워 마음이 갔다.

 

 

⌜모범생, 우등생, 부모가 없어도 반듯하게 자란 아이. 철든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소희를 따라다니는 말들이다. 아주 어렸을 때를 빼놓고 소희는 선생님이나 할머니에게 자기 잘못으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다. 어른들이 어떤 아이를 좋아하는지 알았기에 스스로 그 틀에 맞추어서 살았다. 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다 울음을 터뜨리던 미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소희는 살면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_ 너도 하늘말나리야 p.111

 

 

이 글이 담긴 장의 소제목은 <울고 싶은 아이> 이다.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희가 주질러 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게 해주고 싶었다. 작은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긴 것들 다 쏟아질 때까지.

 

그러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니, 소희에게 그런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무엇보다 소희 스스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용납하지 못할 거야.

 

 

미르와 소희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다. 바우도 그렇다. 바우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소통과 꽃 그림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미르는 자기감정을 밖으로 표출해 버리는 반면에 소희는 자기 안에 담아 태워 사그라뜨린다. 

소리 내어 우는 행동이 미르의 속을 후련하게 할 수는 있어도 소희의 속에는 오히려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장면 하나를 추가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비밀 일기장을 가져본 사람은 안다.

 

말하고 싶은 것이 글이 되는 것을.

 

울고 싶은 아이는, 눈물이 글이 되지 않을까.

 

 

소희는 자신의 눈물로 빽빽히 비밀 일기장을 채우면서 실컷 글을 흘리고 속이 후련해졌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이 나와 닮아 애정이 가는 아이.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후속 작으로 소희의 이야기가 담긴 <소희의 방>이 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방이 궁금하다.




#개정판 이후 14년 만의 재개정판, 어떻게 다르지?

 

이 책은 1999년에 발행된 이금이 작가님의 <너도 하늘말나리야>가 20년이 지나 두번째 새 옷을 입고 나온 것이다.

 

변화한 시대의 감각에 맞게 내용을 고치고 문장도 하나 하나 손 보아 다시 선보인다니, 재개정판과 개정판 이전의 1999년도 작품은 어떻게 쓰였을지 궁금해졌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는데 현재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내용인데 어째서 중학교 교과서로 옮겨진 걸까? 어쨌든, 교과서에는 전문이 아닌 일부 문단이 발췌되어 수록되었을텐데 어느 부분이 어떤 식으로 담긴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미래엔, 중학교 국어 1-1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니, '마음이의 독서 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즐겁게 책만 읽을 거에요." 도서실 국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이 수업 시간에 주인공 마음이가 읽는 책이 바로 <너도 하늘말나리야>였다. 마음이의 독서 일기를 따라서 학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책 선정하기 - 참고 자료를 찾고 메모하며 읽기 - 독서의 즐거움 알기]

 

라는 책 읽는 법을 익히게 된다.

 

마음이가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 발췌되어 교과서에 실려있다. '하늘말나리' 꽃에 대해 주인공 바우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뭔지 아세요? 하늘말나리에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뿐만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빙 둘러 난 잎도 참 예뻐요. 다른 나리꽃 종류들은 꽃은 화려하지만, 땅을 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 핀대요. 어쩐지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모양 같아요.”

_미래엔, 중학교 국어 1-1에 실린 <너도 하늘말나리야>

 

응? 수레바퀴라는 표현이 있었나? 싶어 재개정판의 같은 부분을 찾아보았다. 아. 이 부분의 문장이 다듬어져 있었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뭔 줄 아세요? 하늘말나리예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도 예쁘지만 잎도 예쁘게 났어요. 빙 둘러 난 게 바퀴 모양 같아요. 백합이나 원추리 같은 다른 백합과 꽃들은 꽃이 땅을 내려다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서 핀대요. 그 모습이 뭔가 소원을 비는 것 같아요.”

_<너도 하늘말나리야> 2021재개정판

 

 

아래 문장을 읽으니 꽃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바우가 꽃에 대한 전문적 지식 또한 풍부한 아이라는 것이 더 와닿는다. 아. 이렇게 섬세하게 다듬으셨구나.

 

 

인터넷 서점에서 이금이 작가님의 책을 검색해보니 동화부터 청소년소설까지 무려 5페이지에 걸쳐 작품이 나열되는데 개정판이 아닌 책은 최신간 정도이다. 그만큼 작가님의 여러 작품이 오랜 시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을 내놓는 것 뿐 아니라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그 책의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 작가님, 어린이 독자에 대한 작가님의 성의에 따스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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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현상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오승민 그림 / 밤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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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처음 우리집 열쇠가 주어진 후, 문은 누가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때 나는 열네살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의 씽크대에 서서 쌀을 씻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무언지.

외로움은 공허한 것이고, 서운한 것이고, 불안한 것이고, 맥빠지는 것이고, 느즈러지는 것이고, 시린 것이다.
그걸 온몸으로 느낀 열네살의 아이가 생각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동화집 속 다섯 이야기의 다섯 아이들은 모두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다. 벌이의 의미가 대가성 노동을 넘어 자아 실현인 부모도 있지만, 개중에는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들을 내몬 부모의 자녀도 있다. 우리 부모 또한 그랬다. 아파트는 샀고, 대출금은 갚아야 하고. 모든 게 새 것인 그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은 행복했나? 내 대답은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니." 다.
택시 운전을 하시던 아빠는 더 많은 시간 운전을 해야 했고, 장사를 시작한 엄마는 더 많은 시간 가게 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자신을 위해서였고, 자식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만 중요했지, 자식의 의사는 묻지 않았다.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뭘 알겠나, 나중에 크면 다 감사하다고 할 거다. 여겼을까?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간들은 새 아파트에 살던 때에 모여 있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지? 무엇으로 이겨냈지? 이야기 속 다섯 명의 아이들처럼 담대했더라면...

이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겨운 상황들에 각자의 방법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인다.  그 시간을 스스로 견디고 이겨내는 모습들이 대견하다. 강한 녀석들. 가슴 한 켠에 뜨뜻한 것이 뭉클거린다. 모양과 색이 다 다른 그들 각자의 뚝심이 부럽기도 하다.

ㅡ ㅡ ㅡ ㅡ

'새 아파트에 살게 되면 엄마 아빠는 또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계속 바쁘게 구두쇠로 살 테지.'

_<꽃이 진 자리> 중

어차피 부술 집. 재건축이 확정되어 낡은 것을 낡은 대로 두는데다 엄마, 아빠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기 싫은 소녀. 벚꽃 가지가 늘어진 놀이터 시소 옆 자리에서 열두 살 아이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 한 분과 만난다.

ㅡ ㅡ ㅡ ㅡ

'컴퓨터만 좋은 걸로 바꿔 줘 봐. 누가 피시방에 가나.'
-<한판 붙어 볼래?>중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자식 하나 잘 키우려고' 도시로 이사온 후 부모님 얼굴을 보기도 힘든 영훈이. 학원이 끝나고 게임을 하기 위해 향한 피시방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다. 자신을 이름 대신 '촌놈' 이라 부르는 같은 반 실세다.

ㅡ ㅡ ㅡ ㅡ

현기는 거의 날마다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왔다. 말을 하는 사람은 주로 나였다. 나는 현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신이 났다. 어느새 인터넷 금단 현상도 사라지고 다시 오후 시간이 즐거워졌다.

-<금단현상>중

시험을 망치고도 온라인 게임에만 빠진 오빠에게 화가 난 엄마는 인터넷을 끊어버린다. 오빠가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효은이는 매일 같은 시간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ㅡ ㅡ ㅡ ㅡ

"어쩌다 오시는 어머니 비위 하나 못 맞춰 드려서 저렇게 가시게 해야 돼?" 아빠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무슨 남자가 그렇게 비겁하냐? 선재만도 못해. 집안일 하는 게 무슨 잘못이야? 왜 날 못된 마누라로 만들어!" 엄마 목소리가 더 컸다.
-<십자수>중

평소엔 집안일을 잘 분담하던 선재네 가족은 남존여비적 사고방식을 가진 할머니의 예고 없는 방문으로 싸늘한 기운이 돈다. 그 와중에 선재는 여친의 생일에 선물할 십자수 완성에 급급하다.

ㅡ ㅡ ㅡ ㅡ

꽉 막힌 고속 도로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같았다. 앞으로도 6년 넘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교 수의학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수의학과에 붙지 못하면 수의사도 될 수 없다. -(중략)-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솔직히 걱정스럽기보다 두려웠다. 내가 공부를 못해도,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걸 이루지 못해도 나를 사랑해 줄까.
-<임시보호>중

하은이와 부모님은 미래의 하은이 직업을 수의사로 정한 10살부터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학군이 좋은 동네로의 이사, 경시대회 출전, 영재 교육원 지원, 유기견 임시 보호까지. 모두 하은이를 위한 것이지만, 하은이의 마음은 불안하다.  

ㅡ ㅡ ㅡ ㅡ

이금이 작가님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린다.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다.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가며 나는 울고 웃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각각의 상황은 아이들이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 결핍, 단절은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어른들이, 그러한 사회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판단한 부모들이 끌어들였다. 그 후 아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던져졌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억울해 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과 숙제를 앞에 두고 그저 꿋꿋하다. 기특하다 못해 미안하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 흠뻑 빠져 읽으면서 한 번, 서평을 쓰기 위해 훑으면서 또 한 번,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도중 군데 군데 또 찾아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을 여러 번 만났다. 정이 들었나보다. 내 직업 외에 엄마라는 직종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신이 이 어린이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전해주겠노라 하면, 나는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달라 하고 싶다. 그 시간이 부모들에게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 매일 잠시라도.

맞벌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아이가 클 동안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와중에도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여유를 부모 개인이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것은 부모를 노동자로 모시고 있는 회사의 숙제다. 사회의 숙제다. 한 사회의 어른들에게는 어린이들이 안정감을 갖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할 수있게 도울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금의 어른들도 그들이 어린이였을 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애쓴 더 어른들의 덕을 보고 있지 않나.

모든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세상, 누구나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꿈을 찾을 수 있는 세상. 그것을 바라는 건 산 꼭대기에 올라 손톱만큼의 땅을 거저 얻기를 바라는 것과 같을 것이다. 허황된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가정.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꿈을 찾게 해주는 가정.
바로 우리 집부터, 노력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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