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볼래요? - 엄마들의 삶에 스며든 영화 이야기
부너미 기획 / 이매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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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롯이 혼자된 밤.

그녀들이 본 영화와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82년생 김지영, 디 아워스 같은 유명한 영화에서부터 페미니즘 영화, 독립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그녀들의 삶과 연관지어져 소개되는데, 사실 영화 이야기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녀들의 사는 얘기다.

 

'어머 이 영화 재미있겠다. 이 영화 꼭 봐야지.'

 

보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

 

라는 감상을 준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엄마들의 삶에 스며든 영화 이야기'인데, 내게는 '혼자된 밤 영화를 보고 싶은 엄마들의 삶 이야기'였다. 영화라는 소재가 꼭 필요했을까? 싶을 만큼 그녀들의 이야기는 내게 한 편의 영화, 혹은 소설과 같은 웃음과 눈물을 주었다. 진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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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명절이 맞아 놀러 온 고모가 내게 물었다.

"넌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세 살짜리한테도 안 할 질문을 던지는 무례함에 화난 나는 엄마가 옆에 있는데도 고모를 무안하게 할 작정으로 쏘아붙였다.

"둘 다 싫은데요?"

_정현주<우리는 기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은 주말에만 아빠를 만나는 생활에 꽤 빨리 적응했다. 처음에는 헤어질 때 울기도 하고 아빠가 왜 자기들하고 같이 살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아빠는 아빠 집에 산다고 처음 말한 날 새로운 상황에 낯설어하는 아이들을 보며 심란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곧 아빠 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주말에 집중해서 놀아주는 아빠를 여전히 좋아한다.

_김은희<쿨한 게 아니라 노력하는 중입니다>

 

"부우욱."

살짝 들떠 있는 벽지 끝부분을 잡고 힘을 주어 당겼다. 거실 벽 짙은 회색 벽지가 끔찍이 싫은데도 3년을 참고 살았다. 무슨 색으로 칠하면 좋을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무지개색!"

_살구<이 세상 낡은 벽지를 무지개색으로>

 

나는 바쁘다. 가족만 바라보고 살기에는 하고픈 일이 많다. 글도 쓰고 싶고 좋은 영화도 보고 싶고, 직장과 가족에 매달리느라 미룬 취미들, 맨 후순위로 밀린 스페인어도 제대로 배우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다. 나한테 맞는 제2의 직업을 찾아 꾸준히 일하고 싶기도 하다. 자녀들에게 매달릴 시간이 없다.

_블랑 <어느B급 시어머니의 고백>

 

아이가 장염을 앓던 긴긴밤, 사분의삼 박자로 고르게 흐르던 숨결이 급해지면 재빨리 일어나 아이 입에 대야를 갖다 댔다. 토사물이 나오는 찰나에 대야를 대지 못하면 내 손바닥이라도 대신 내밀었다. 누운 채로 용번을 보면 대변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탓에, 아이 엉덩이에서 천둥소리가 날 때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음 준비를 해야 했다. 뒤처리를 하는데 남편이 지나가며 말했다. "으, 나는 못하겠어. 엄마는 참 대단해."

_안성은 <엄마는 강하다는 말>

 

아이들이 잠들면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집을 치우고, 반찬을 만들었다. 집안일은 온정일 해도 끝나지 않았는데, 아무리 해도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 더 기가 막혔다. 손목와 발목, 허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나는 가사와 돌봄을 남편하고 나누기로 결심했다.

_나비<모래사장에 빠진 유아차를 옮기려면>

 

남편은 회사 생활을 우선하다가 퇴근 뒤 한두 시간 또는 주말에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아주면 '아빠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꾸준히 경력을 쌓았고, 연봉도 올랐다. 경제력과 돌봄력을 다 갖춘 매력적인 삶이었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주 양육자 구실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밤낮없이 일해도 수입은 불안정했고, 집에서 일하다보니 아이들하고 갈등이 자주 생겼다. 체력과 인내심은 바닥 났다. 간식 달라는 말에도, 색종이 잘라 달라는 말에도 짜증이 났다.

_이성경<엄마들이여, 사치하자>

 

“너, 금, 토 시간 있어?”

반갑게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되묻는 친구에게 ‘1박2일’이라고 말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긍정적인 답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혼자라도 짐을 싸 나갈테고, 하루 동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작정이다. 나는 이렇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_구성은<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한 여자들>

 

결혼 뒤 아이를 낯고 낮과 밤을 구별하지 않은 채 흘려보낸 무수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쉼 없이 흘러간 시간 안에 나를 담은 계절은 얼마나 있었을까. ‘엄마’라는 이름에 누구보다 충실하게 살아간 나를 치켜세운 말들,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삼킨 그 말들을 모두 다 토해내고 싶었다.

따뜻한 위로는 내가 아니라 ‘엄마’를 향해 있었다.

_유보라<나는 날마다 내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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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성들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 부너미.

그녀들의 두번째 책인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는 내가 가졌던 성에 대한 기존 인식을 깨뜨리고 남편과 평등한 관계를 이루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책에 쓰인 평범(하고 내면이 단단)한 엄마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전작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도 찾아 읽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공감했더랬다.

 

세번째 책 <우리 같이 영화 볼래요?>는 전작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좀더 가깝고 친근하다. 마치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보통 엄마들의 다큐멘터리가 섞인 듯 잔잔하면서도 재미있다. 문장 하나 하나에서 글쓴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낯선 이들의 그 목소리가 마치 오래 사귄 친구의 목소리처럼 정겹다.


페미니즘, 섹스, 영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그녀들의 일상에서 또 어떤 것들이 이야깃거리가 되어 책으로 엮일 수 있을까?


부너미의 다음 책이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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