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 흔하지만 가장 특별한 동행에 관하여
한혜진.오승현.박용미 지음 / 책소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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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사회는 ‘엄마’라는 존재를 특별히 여기면서 특별히 만만하게 본다. 그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솟구칠 것 같은 존재라며 존중은 해주지 않는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난다는 자식들이 엄마랑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엄마를 위해 하는 건 뭐가 있나.

엄마라면,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기다려야 하며 자신의 삶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심지어 엄마 당사자들도.......

 

나도 그랬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다. 철없던 시절엔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반겨주지 않고 일을 하러 나가있는 엄마를 ‘엄마의 본분’ 을 다 하지 않는다며 원망하기도 했다. 그 이기적 발상에 어이없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 ‘엄마의 본분’ 이 이제 엄마가 된 나를 압박한다.

 

엄마가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것- 어쩌면 결혼을 선택하고 가정을 이루기로 결정한 이상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화가 나는 건, 엄마만 가족들을 위하길 바란다는 거다. 엄마만 그래야 한다고, 엄마는 그래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 문제이다.

아빠도 아이도 가족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가족의 삶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함께 이루어야 한다. 아빠는 어린 아이 양육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엄마가 자기 삶을 가꿀 시간을 주어야 하며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집안일에 동참해야 한다. 밥 먹고 설거지를 도우려는 아이에게 넌 공부나 하라고 할 것이 아니다. 고맙다고 해야 한다.

아빠= 돈 벌기, 엄마= 집안일, 아이=공부 로 해야 할 일을 구분하는 무책임하고 불평등한 분업은 이제 멈춰야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체 어쩌다 대한민국의 엄마는 뒷바라지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왜 엄마는 일을 하며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엄마가 되면 일도 꿈도 접고 정녕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할까? 엄마가 아이를 만나고 더 근사한 삶을 누릴 수는 없는 걸까?

 

 

<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과거로부터 정의된 ‘엄마’의 역할 속에서 ‘나’를 잃어버릴 뻔 했던 여성들이 스스로를 지켜내고 일궈나가는, 앞으로도 진행될 이야기이다.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36개월 전, 24개월 전, 12개월 전 내 이야기, 지금의 내 이야기 같다.

맞아맞아 끄덕이다 그래그래 웃다가 아하! 무릎을 치다 어느 순간 겸허해졌다가........ 키즈카페 탁자로 주책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손바닥으로 훔쳐내고 다시 피식 웃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쭈욱 기지개가 펴진다.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떤 기분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솟는다.

 

다소 길다 싶은 소제목들은 한 줄만 읽어도 엄마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책장을 펼칠 기력도 없는 엄마들에 대한 깊은 배려심이라고 한다. 이 한 줄이라도 읽고 힘내라고. 안다고. 다 안다고. 토닥여주는 작가님들의 마음에 또 한번 가슴에서 눈시울로 뜨뜻함이 차오른다.

 

 

 

온종일 ‘엄마’로 사느라 수고한 그대에게

 

 

책꽂이보다는 식탁 위나 소파 옆에 자리하고 있어야 할 책이다.

막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내리고 고무장갑에서 시큰대는 손목을 꺼낸 그대가 식탁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일 때, 비록 몸은 누워있으나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아이재우기를 가까스로 성공하고 무거운 머리를 소파등받이에 걸칠 때 그 옆에 이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친 그대를 위로해주기 위해 기다린 친구처럼.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는 동질감이 막막한 상황에서 축 처진 엄마의 어깨를 쓸어준다. 어디에선가 나와 꼭 같은 모습의 푸석푸석한 얼굴로 방 벽에 기대 앉아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건네고 싶은 밤이다. _ p.83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심지어 훌떡 훌떡 뒤적이며 제목만 읽어도 그대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을 쓴 엄마들과 함께 ‘나를 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그대에게 허락된 (짧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벌써 반은 성공이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나만을 위한 일을 해보자. 그 일이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남편도 친정엄마도 절친도 내 마음을 몰라줄 때, 그 일만은 나를 다독여 줄 것이다.

아이를 만나고, 사라진 나를 찾기 위해 시작한 그 일로 오롯이 나 혼자 즐겁자고 한 그 일로, 그대는 더욱 근사해질 것이다.

 

근사한 나를 위한 계획

 

“비록 당장은 못할지라도, 누군간 비웃을 시시한 것이어도, 언젠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으며 행복회로를 돌린다.”

 

이 책 55쪽의 제목이다. ‘근사 해진다’ 는 건 어떤 걸까? 누가 나를 근사하게 봐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근사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간 비웃을 시시한 것이어도, 내가 해서 즐거운 일. 그 일이 나를 근사하게 만들 거라는 마음으로 적어보았다.

 

 

<언젠가 하고 싶은 것들>

 

 

1. 슬로리딩 독서모임 팀원들과 1박2일 여행가기.

2. 놀숲에서 하루종일 만화책보기. 아침은 베이글, 점심은 떡볶이, 저녁은 볶음밥!

3. 볕 좋은 날, 아무도 없는 내 집에서 뒹굴대며 추리소설 읽기. 간식은 라면.

4. 내 글 꾸준히 연재하기.

 

 

별 거 없다. 여행도 책보기도 글쓰기도, 엄마가 되기 전엔 아무 때고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된 지금은 이 소소한 일들이 절실한 꿈이 되었다. 작은 일에 큰 의미가 생기는 순간, 삶이 조금 더 소중하고 애틋해지는 게 아닐까. 엄마가 되니 나의 시간도, 나도, 아끼고 싶어진다.

 

 

 

엄마가 근사해질 필요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갖는 ‘기본적’ 권리이다. 인권은 개인의 자존감과 연결된다. 한 인간이 갖는 자기 만족감은 주변에도 좋은 에너지를 준다.

가족을 위한답시고 자신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꾸리는 가정.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 어떨까?

 

아직도 엄마의 삶이 가족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고 믿는가. 크게 보자. 가족에게 존중받는 엄마가 행복한 가족을 꾸린다. 가족이 행복한 사회가 좋은 나라를 만든다. 이 사회는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근사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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