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책에서 그리는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무어라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내기 어려운 세계였다. '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하는 건 지금은 의미가 없겠구나' 깨닫고 소설에서 말하는 세계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자 희끄무레하고 형체가 잡히지 않는 세계보다 인물의 모습과 행동과 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분명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채 서포터즈 2기 4월 의무 서평 도서다. 이번 신간『붉은 옷의 어둠』으로 미쓰다 신조의 글을 읽는 게 두 번째이다. 개인적으로 『검은 얼굴의 여우』보다 『붉은 옷의 어둠』이 읽기가 수월했다. 그 이유가 작가의 집필인지 옮긴이의 재량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분량이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모토로이 하야타는 '방랑하는 청년'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이번에도 괴이가 나타나 사람을 미행한다거나 쳐다본다거나 한다는 '붉은 미로'의 소문에 휘말린다. 탐정 놀이는 그만하고 싶으나 그의 절친한 친구 구마가이 신이치는 하야타를 치켜세운다. 등 떠밀리듯 자연스럽게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게 된 하야타는, 붉은 괴이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유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게스트의 이야기와 이언주라는 한 사람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꽉 찼다. 읽고 나면 꼭 눌러 담은 밥 한 끼를 마음으로 먹은 듯이 마음이 든든해지는 책이다. 프로그램 제작기, 첫 촬영 날, 비하인드 스토리와 사진 등 유퀴즈가 알려진 뒤에 알게 된 이들은 몰랐을 법한 이야기들도 든든함에 한몫한다. 이언주 에세이지만, 프로그램 특성상 사람 사는 이야기가 주이기 때문에 사실 이 모든 게스트와 이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낸 많은 이들의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언주 에세이인 건, 이언주의 눈과 목소리. 그리고 이언주라는 한 사람의 삶이 녹아든 글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정호승 시인의 속도가 짙게 밴 책이다. 그가 살아 온 일생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들이 정호승 시인만이 가진 목소리와 속도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단지 그의 시 혹은 산문만을 바라고 이 책을 펼친다면, 감히 확신하건데 당신을 놀랄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일생을 보내며 보고 느낀 모든 것들에서 세상의 이치, 만물의 진리를 깨달은, 일종의 깨우침을 모아뒀다. 지루하다 여길지도 모르나, 정호승 시인의 깨우침은 우리 일상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먼 곳까지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