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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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는 단순히 식민지 시기의 ‘간식 문화’를 조명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먹는 행위를 통해 식민지 조선이라는 비극적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살아냈는지를 되짚는,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한편으로는 날카로운 인문학적 고찰이다. 디저트를 통해 ‘모던’이라는 시대정신과 서민들의 고단한 삶, 계층의식, 식민주의 담론,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디저트들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조선인들이 문명의 이방성과 맞닥뜨린 경계이자, 억압 속에서도 살아가고자 했던 그들의 생생한 흔적이다.

커피는 당시 다방이 단지 음료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현실을 벗어난 고독한 꿈’의 공간이었음을 환기시킨다. 문인 이상이 표현한 다방의 의미—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청하는 곳—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카페와도 연결된다. 흥미롭게도 스타벅스 창업자의 철학과 100년 전 경성 문인들의 감수성이 맞닿아 있다는 비교는, 시대를 초월한 '공간의 경험'이라는 개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만주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고학생들의 주요한 판매 품목이었고, 그들이 속한 ‘갈돕회’라는 고학 공동체를 통해 공동체의식과 생존 투쟁이 어떻게 교차했는지를 조명한다. <삽화 속 만주 장수>의 모습은 당시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감정으로 살아갔는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멜론은 ‘고급 과일’이라는 위계 개념의 도입과 더불어, 이국적 향기에 대한 동경이 어떻게 젊은이들의 감성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특히 작가 이상이 임종 직전 “멜론이 먹고 싶다”고 말한 일화는 멜론이 단순한 과일을 넘어, 근대적 욕망과 감성의 상징이었음을 암시한다.

당시 호떡은 그 크기와 가격 면에서 서민들의 식사를 대신할 정도로 든든한 음식이었지만, 사람들은 호떡집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이는 단지 음식의 사회적 위상 때문이 아니라, 식민지 시기 일본의 반중국 정서 조장이 미친 문화적 영향이라는 분석은 탁월하다. 일본이 중국을 ‘어둡고 불결한 타자’로 규정하면서, 호떡 같은 중국 유래 음식에도 부정적 인식을 덧씌웠다는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 있고 날카롭다.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는 디저트의 감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그 시대의 보건 위생, 계층 간 문화 차이, 경제 논리, 계절성과 같은 요소들과 얽혀 있었다. 라무네는 탄산의 상쾌함만이 아니라, 수인성 전염병을 피하려는 일종의 ‘문명화된 선택’이었다. 초콜릿은 이미 연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군고구마는 겨울밤 주린 배를 달래는 서민들의 현실이었다. 방정환이 ‘빙수당 당수’였다는 귀여운 에피소드는 당시에도 사람들이 디저트를 통해 계절을 즐기고, 문화를 향유했음을 보여준다.

본 도서는 당시의 소설, 신문기사, 광고, 사진 등을 활용해 역사적 사실을 생생히 재현하면서도, 각 디저트가 당대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파고들었는지를 풀어낸다. 그는 ‘먹는다는 것’을 단지 생리적 욕구 충족이 아닌, 사회와 관계하고 문명과 부딪히며 감정을 나누는 다층적인 행위로 규정한다.

결국 이는 디저트를 통해 근대를 다시 읽는 시도이자, 소소한 단맛으로 고단한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기록이다. 음식이 기억을 담고, 맛이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는 디저트라는 매개를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고 사람을 말하는, 깊고도 맛있는 교양서이다.

지금 우리의 커피, 빙수, 초콜릿 한 조각에도 역사의 맥락과 감정의 유산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이 남긴 가장 값진 통찰일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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