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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A-Z
얼프 퀴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23년 4월
평점 :
내가 꿈꾸는 집, 내가 원하는 창문의 모양과 크기는 모두 다르듯,
모두가 정답이며, 반대로 모두가 정답은 아니다.
정답을 찾는 방식이 그의 작품만을 들여다보는 것일 수도 있고,
그가 살아온 삶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본작의 경우는 호퍼 A-Z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후자이며,
그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자신의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을 내놓는다.
호퍼 A-Z을 통해 바라본 그의 작품은 최소한의 정보를 그림에 담는다는 사실이었다.
워낙 정보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해석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래서 더욱 스스로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나의 답이 오답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기에.
키워드들을 통해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본 뒤로는,
말이 유독 없던 그의 성격을 작품이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 49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단어로 이미지를 창조하는 괴테의 능력을 특히 사랑했다.
p. 115
호퍼는 자신의 작업 과정에 대해 말하거나 자신의 예술에 대해 설명한 적이 거의 없다.
(중략) 회화에서의 나의 목표는 자연에 대한 나의 가장 사적인 인상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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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목차는 그의 삶에 있어 크고 작은 키워드들이지만, 그에 맞는 호퍼의 작품이 매번 등장하는데
키워드에 대한 견해가 길지 않고, 전문 용어가 남발되지 않아 예술도서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읽기 좋은 책이다. 때문에 오히려 미술 관련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거나 도서를 읽어본 경험이 있다면, 쉽게 느껴질 수 있는 본작보다는 각각의 작품에 대한 깊은 해석이 담긴 <빈방의 빛>을 추천한다.
이전 내용이 재차 등장할 경우 화살표로 표시되는 키워드, 그 밖의 도움말은 편의성을 위함도 있겠으나 예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편집하신 듯했다.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양장과 아르떼 내지, 단색 배경 속 굵은 글씨로 나타나는 키워드는 호퍼의 작품과 잘 어울리기도 했다. 그 밖에도 적당한 여백 덕에 읽기가 정말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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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작품은 <나이트호크>, <이른 일요일 아침>, <등대 언덕>, <바다 옆의 방> 이었다.
절제된 서사로 가득했던 그의 작품 대부분은 그 안에 담긴 인물과 공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면,
이 네 작품은 그 안으로 들어가 관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화는 일종의 언어적 영점에서,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시작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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