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어증 직원도 따르게 만드는 상사의 기술
이시다 준 지음, 노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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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혼자서 하는 경우가 없다. 글을 쓰는 작가도 혼자서 타잎핑을 하는 듯 보이지만 막대한 양의 글 재료와 함께 일한다. 글의 내용과 목적에 따라서 글 재료는 달라지고 배경지식도 달라진다. 흩어진 자원을 끌어 모아서 한 편의 글을 완성 시킨다. 작가를 앞에서 뒤에서 이끌어주는 것은 작가 자신과 그 작가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일보다는 사람에 치이는 경우가 많다. 일은 어떻게든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렵다. 그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일의 완성도나 일의 재미를 가감시키기도 한다.

팀워크를 멋지게 발휘하려면 구성원 개개인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정말 그럴까. 요즘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이 참 어렵다. 분업을 해서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은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온다. 분업한 일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마무리하게 되어있다.

어떤 위치에서든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각 개인이 필드 플레이어로서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고정시키지 말고 여러 가지를 경험해야 한다. 때론 적성이 아닌 일도 하면서 진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과 잘 못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 잘못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은 그 강점을 더 살리고 할 수 없는 일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을 일을 분류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일이 주어지든지 그 일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일을 세분화 하고 디테일하게 시스템 해 놓는다면 그 자리에 오는 어떤이든 일을 헤매지 않고 할 수 있다.

일하기 싫어증 직원도 따르게 만드는 상사의 기술은 무엇일까. 어느 곳이든 리더의 자질에 따라 그 회사나 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경제를 뒤흔드는 대기업의 초대 CEO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다. 하루를 계획된 틀에 넣어서 HOW WHY의 사이에서 귾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의 세대들에게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칭찬도 꾸중도 정도를 지켜야 하며 때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직언도 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과업도 달성하게 하고 때론 쓴약도 달게 때론 단 약도 쓰게 먹일 줄 알아야 한다.

직장 내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하나의 목표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팀으로 함께하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일의 방향은 양끝에서 당기는 줄다리기가 아니라 함께 큰 물주적자를 들고 가는 동반자의 마음이 필요하다.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힘 조절도 필요하고 물이 넘치지 않도록 잘 받아 낼 줄도 알며 물이 제 역할을 다 하도록 목적지 까지 잘 들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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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독서 -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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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책을 읽거나, 책을 사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목적이 잇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는다. 돈을 잘 벌기 위해서, 재미를 위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무언가의 위안이 필요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책을 목적을 가지고 읽으면 어떨까.

서민 교수님은 왜 책을 읽어야만 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책이 모든 삶의 방법이나 공식은 아니지만 나침반은 된다고 말한다. 자기 안에 갖힌 삶을 살다보면 책을 한정적으로 읽는다 또는 책을 멀리 한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본 사람이 잘살거나 똑똑한 것은 아니다. 책을 읽을 권수나 양이 그 사람의 그 무엇은 아니다.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알고 책을 편견없이 편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늘 말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하라고!’

그런데 진짜 그럴까. 우리가 성공하려면 자기계발서의 매뉴얼대로 움직이면 될까. 그렇다면 진정한 성공은 무엇일까. 현재의 우리에게 성공은 물질적인 가치로 매겨진다. 돈만이 성공의 전부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상성의 신화 이건희 회장은 지금 병상에 누워 죽음 앞에서 갈팡질팡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의 삶의 마지막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의 아들은 어떠한가.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한 삶은 아마도 인간답게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계절이 지나감을 느끼고 사람의 향기에 취하고 일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삶이 정말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거울을 앞에 놓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당신은 지금, 웃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무표정이거나 덤덤한 표정일 것이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무게가 얼마가 가벼운지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서민독서에 나오는 교수님의 말처럼, 나 역시 소설책이 좋다. 그 안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경험한 일도 혹은 경험하지 않은 다른 일도 모든 눈과 마음으로 내재화된다.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일상이 미소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삶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간접경험이 쌓여서 삶의 고단함도, 미움도 어려움도 혹은 기쁨이나 행복도 모두 그의 것이 되어 배려가 켜켜이 화석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이의 감정을 알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늘 혼자일 수 밖에 없다. 그의 삶은 늘 고독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풍요속의 빈곤처럼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정작 가족마저 나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 된다.

앞으로의 우리의 삶은 호모데우스에 나오는 것처럼 행복에 귀결된다. 물질적인 풍요는 이미 가득찼다. 정신적인 풍요를 찾아서 인문학 열풍도 불고 여행도 붐처럼 일어난다.

그러나 당신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은가. 그럼 책과 가까이 지내라. 마음을 터놓고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함께 가는 길은 오래 멀리 갈 수 있으니까. 책의 순례자 길에 그 누군가와 함께 라면 그 어떤 책이든 동반자가 있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서민독서, 독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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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감옥 -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앙드레 샤르보니에 지음, 권지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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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 날 것이다

영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이 한 말 중에 하나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적도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그 장면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살면서 하는 90퍼센트의 걱정이 사실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걱정 없이 살 수 없다면 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걱정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인 것이다.

걱정은 두려운 감정을 그대로 녹여낸 일상의 그림자이다. 어둡고 습하고 눅눅하고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나의 생각이 만들어 놓은 나쁜 자기방어 체계이다. 걱정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병이 든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이야 말로 그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할까. 행복의 필요충분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삶들은 물질적인 영역에서 행복을 저울질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생각한다. 진실로 그 무엇이 나를 행복으로 데려다 주는가. 그것은 양면성을 띈다. 일시적으로는 물질적인 만족이 정신적인 포만감을 불러오지만 만족은 한도가 정해지지 않는다. ‘더더더를 외치며 욕구는 욕망으로 욕망은 타락으로 나아간다.

아들러의 말처럼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인정받기 위해서 물질적인 나눔을 하거나 물질적인 치장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런데 진정으로 나의 정신적 욕구는 가득 채워졌는지 묻고 싶다. 아니, 나의 정신적인 안위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정신은 이원의 세계이다. 정신의 더위와 추위, 높은 곳과 낮은 곳, 삶과 죽음, 사랑과 두려움 등 모든 것은 대립된 짝을 가지고 있다. 자기생각이라는 절대적 진리 밑바탕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감정이 발생한다. 불편한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마 인정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삶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자 나의 마음의 정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잣대가 된다. 사노 요코처럼 그러거나 말거나를 늘 마음에 새긴다면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최인철 교수의 책 프레임에 보면 삶을 바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세라고 나온다. 이 책에도 우리가 두려움에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나온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 혹은 태도의 변화가 내 삶의 두려움을 강점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그 단어 그 자체에 고립되지 않고 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재해석해서 두려움 또한 나를 성장 시키는 발판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 성장 한다. 아이가 일어서기 까지의 한 짝발씩 발을 떼는 것이나 청소년기의 중2, 사회의 첫발, 군대에서의 첫날밤,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때 등등 많은 상황에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리는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간다. 그 나아가는 발자국이 모여 나의 삶의 자세가 된다.

무서운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모모

책 첫 장에 나오는 로댕가리의 자기 앞의 생중 로자 아주머니가 한 말이다. 무서운 건 본능적으로 무서운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본능이다. 그 본능에 이유를 찾기 보다는 내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우물 속 개구리처럼 손바닥에 보이는 하늘만 보지말고 그 넘어의 세상을 향해 나 그대로를 마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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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얕지 않은 지식 - 정신분석학부터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으로 바라본 성
이인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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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멕시코 화가. 평생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견디고 늘 한 사람 디에고 리베라를 마음에 담은 그녀. 아이도 낳을 수도 없고 한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누리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없었던 그녀에게 그림은 그녀 그 자체였다.

책장을 넘기며 눈에 익은 그림을 보고는 반가움이 먼저 툭, 튀어 나왔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뿌리였다. 자신의 온 몸을 기반으로 줄기가 뻗쳐나가고 그 끝마다 대롱대롱 잎사귀가 매달렸다. 사고로 온전하지 않은 그녀의 다리는 긴 드레스에 가려져 인어처럼 나풀나풀 거린다.

여성이 사회에 두 발을 내딛고 서게 된 날은 언제부터일까. 성해방의 투쟁으로 얻은 여성의 지위는 지금 만족스러운가. 현재, 여성과 남성의 두 성이 평등하게 대등하게 마주보고 있는가. 진정으로 여성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해방 앞에서 끊임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우리나라는 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다. 불결하거나 금기시 되는 의 개념은 늘 감춰지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성행위는 인간의 행동 중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며 그 행동으로 인해 자기만족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다르게 보인다. 책속의 말처럼 자기 정체성의 근간인 것이다.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5단계에서 남근기에는 초자아가 형성 되는 시기로 리비도가 성기로 옮겨가는 시기이다. 오이디프컴플렉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시기를 겪으면서 자신에 대해 더 이해하고 부모에 대한 집착과 선망 그리고 콤플렉스 극복을 통해 자아를 현성해 나가는 시기이다. 리비도의 흐름에 따라 성은 가장 자연스러운 장난감이며 자기를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 단지, 쾌락을 통한 만족이 아닌 본능 그 자체로서의 자아인 것이다. 리비도를 통한 관찰과 경험은 가장 원초적인 쾌락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문을 열어준다.

우리나라는 교육만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관계도 늘 주입식이었다. 남성은 하늘, 여성은 땅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남존여비 사상은 옛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뿌리깊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자라서혹은 여자답게를 강요하는 사회인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남·녀 평등이 더디게 가는 것은 아마도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규격화되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남자만 공부하고 남자만 높은 직급에 올라가고 여자는 아이 낳고 살림하고 여자는 늘 남자의 뒤에 서 있는 그림자처럼 여기던 모습이 아직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보는 방법에 대한 투쟁

우리는 얼마만큼의 시야로 성을 보려고 하는가. 성은 어둡고 나쁜 것이 아니다. 성은 그 자체로 즐기고 받아들이고 함께함을 통해 배려와 관계의 심리학을 배운다. 혼자서 할 수 없는 혹은 혼자서 할 수 있더라도 그 자체는 나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다. 행위 그 자체가 아닌 행위를 통한 배려와 만족 그리고 이해가 필요한 또 다른 대화 방식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보는 방법이 내 기준이 아닌 또는 나를 보는 방법이 상대방의 기준이 아닌 우리 자신의 프레임에 대한 투쟁 안에서 온전한 받아들임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고 그 안에서 나 다움을 발견하고 정진해 나간다. 그 발걸음에는 멈추지 않는 투쟁이 필요하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 ‘함께라는 말 안에도 수많은 번뇌와 양보와 나눔이 필요한 것이다. 그 누구의 희생도 아닌 서로에 대한 배려만이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마주볼 수 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누구도 없이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든지, 어떤 환경에 놓이든.... 모두 상관없이 그 사람 그 자체로 빛나는 하나의 덕이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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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용기는 없다

 

사노요코는 말한다. 그 누구도 용기는 없다고 말이다. ‘러브 호텔 건설 반대에 서명할 사람 혹은 선뜻 나서서 용기를 보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대중이라는 이름 앞에서, 다수의 사람 앞에서 나를 숨기로 우리를 내세울 뿐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그저 대중이라는 이름에 나를 숨기고 너를 저버리고 우리로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치적 소신도 잊고 경제적 가치를 모른 채 하며 시민의식을 땅에 묻고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욕심의 무게추만 기울이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지금의 현실 사태가 참 무겁고 먹먹하다.

우리라는 가면을 쓴 우리의 주체인 나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전쟁을 겪은 사노요코의 부모님과 사노요코의 세대들에게 귀한 것은 그저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 한다. 어떤 좋은 음식도 아니고 어떤 좋은 옷도 아니고 그저 내 몸 누울 수 있는 공간만이 그들에게 전부가 아닐까. 그래서 사노요코는 방의 다다미 크기가 아닌 여러 가지 모양의 집을 꿈꾼다. 실용과 미학이 아닌 그저 누울 수 있고 괜찮은 화장실이 딸린 그런 공간을 원한다. 요즘의 우리가 방의 구조며 가구며 세세한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온전하게 살기 위해’ , 내 몸 쉴 그 공간만이 유일한 집의 자리인 것이다.

지금 내 몸 쉴 공간을 나는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저 잠을 자고 일상을 녹아내는 공간이 아닌, 내 마음 편히 쉴 나만의 아지트가 있는지 말이다. 그 아지트에는 형식도 없고 예의도 없고 걱정도 없는 오로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스며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살포시 떠오르는 장소에 이내, 마음이 따스해 진다.

이번 책은 1980년대에 쓴 에세이가 많다. 30~40여년 전의 일이 소소하고 가볍지 않게 와 닿는 이유는 산다는 건 어느 시대나, 어느 모습이거나 비슷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다른 장소, 다른 이유로 생기는 일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이 최고의 드라마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용기만 있다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떻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뭐가 어떨까 한다. 그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고 내 삶에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나간다면 말이다. 투철한 삶의 의지와 용광로 같은 열정이 아니더라도 내 삶의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의 삶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소소한 삶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니까. 좋아 좋아, 그렇게만, 그렇게만 나에게 용기를 가지고 말이다.

 

메론 한 조각을 음미하며 , 정말 맛있다라는 말이 사노요코의 글에 그대로 맛깔나게 녹아든다. 그 달큰함이 내 삶에도 살포시 미소로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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