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강, 꽃, 달, 밤 - 당시 낭송, 천 년의 시를 읊다
지영재 편역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봄의 강, , , 을 읽고

 

장안의 봄 저물려 하는데,

왁자지껄 거마들 지나간다.

모란이 필 때라고 말하면서,

서로서로 따라가 꽃을 산다.

 

백거이 꽃을 산다중 일부

 

모란꽃은 꽃의 색이 붉기 때문에 란이라 하였고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고 모자를 붙였다. 당나라에서는 모란을 아주 귀중하게 여겼다. 그것도 당나라 초기, 개원 천보 연간에는 다만 진귀한 존재였을 뿐이지만 후기 정원 원화 연간에 와서는 크게 유행하여 도하에 이르는 곳마다 재배하였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를 상징으로 여겨왔다. 설총의 화왕계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하고 있다. 강희안은 그의 저서 양화소록에서 화목 9등품론이라 하여 꽃을 9품으로 나누고 그 품성을 논할 때, 모란은 부귀를 취하여 2품에 두었다.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왕비나 공주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는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모란은 빠질 수가 없었다. , 미인을 평함에 있어서도 복스럽고 덕 잇는 미인을 모란꽃과 같다고 평하였다.

위의 시구를 읽으면, 봄날의 풍경화가 한 폭 그려진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 서로 서로 모란꽃을 사려고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화려하고 귀품 있는 모란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볍게 나풀댄다. 그들의 얼굴에 내려앉은 미소가 꽃보다 더 붉게 저녁놀을 따라 번져간다.

그네들의 삶에 모란은 귀한 봄 그 자체였을 것이다. 구하기 어려운 꽃, 크고 아름다운 생김새, 한 눈에 들어오는 꽃송이 등등 여러 가지 의미가 그들의 손 안에 품어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선덕여왕이 생각이 났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선덕여왕 공주시절 일화로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이 꽃은 고우나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씨앗을 심어 본즉 과연 향기가 없었다. 이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은 선덕여왕이 배우자가 없음을 당 태종이 조롱한 것이라 하여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모란꽃에는 분명 향기가 있고 벌과 나비도 날아든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모란꽃에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는 법식이 있었다. 그것은 모란 그림에 나비를 그려 넣게 되면 모란꽃은 부귀를 뜻하고 나비는 질수(80)를 뜻하기 때문에 부귀질수가 된다. 이는 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의미인데, 부귀를 누리는 나이를 제한을 두어 함께 그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란꽃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살아 있는 그 객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특히, 말과 그림으로 보여진 객체는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다르게 해석 될 수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편의 시구절도 마찬가지이다. 말로 전해지다가 글로 남게 된 시 구절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읽혔을 수도 있다. 혹은 장난삼아 쓴 언어유희도 있을 수도 있다. 시대나 사람에 따라서도 그 해석이 다른 시도 많다.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이라는 시어처럼 말이다.

이는 글과 그림 분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이 쌓이고 나의 노력이 더해지고 나의 배려가 삼박자를 이루어야지만 상대방을 조금은 올바르게 보지 않을까 한다.

시간 무르익는 봄 밤, 밤공기를 타고 나의 목소리에서 계절이 녹아든다. 한 구절.. 한 구절.. 계절에서 사람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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