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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하얼빈의 11일
원재훈 지음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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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하얼빈의 11일》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는데, 저자와 안면이 있다. 국악방송 문학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 책에 묘사된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미묘한 디테일이 얼마 전에 읽은 《불멸》과 다소 달라 오히려 흥미로웠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글의 형식이다. 저자가 1인칭으로 등장하는 르포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안 의사의 행적을 묘사한 소설이 뒤엉켜 있는데 별로 헷갈리지 않고, 그런 뒤섞임이 의외로 재미있다. 저자가 그 점을 의식하고 일부러 선택한 형식이라고 보기에는 구성이 좀 얌전하지만. ‘이런 구성을 분명히 어딘가에서 봤다, 그것도 자주 봤다’라는 느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TV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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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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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다. 가슴 아픈 내용들이 가득 차 있지만, 책의 제목은 다소 사기다. 다 읽고 나도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투기세력들이 곡물을 사들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지 못한다는 식의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왜 곡물이 투기의 대상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알아야 곡물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국제투기세력의 탐욕 때문이라는 비판에서 멈추는 답이 어떤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인가.

 

책에서 주장하는 이유들은 대부분 북한 상황에 대입하면 성립하지 않는다. 투기세력이나 다국적 기업의 횡포, 제국주의의 잔재 때문에 북한에서 기아 사태가 벌어졌나?

 

때로 저자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증거가 제시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군벌이 국민을 착취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기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하면서 동시에 서방 국가가 이들 국가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투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의미 있는 시도가 좌절된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왜 김정일과 피델 카스트로와 사담 후세인 때문에 미국이 골머리를 썩였는지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다.

 

어쩌면 어린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탓에 충분한 정보를 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도 읽어볼 생각이다.

 

민족자결주의라거나 주권과 같은 개념에 대해 나는 다소 의문을 품고 있다. 나라보다 사람이, 주권보다 인권이 우선하는 것 아닐까. 독자적으로 절대적 기아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당분간 없는 나라에는 외세가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들어가 지역 정치세력을 정리하고 신탁통치를 하는 게 과연 나쁜 일일까. 그런 세계정부주의가 제국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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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 동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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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서울》을 읽었다. 읽다보면 정좌하게 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은 아니다. 나로서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는 재작년에 온 동네 사진 찍고 다니면서 지명과 거리에 얽힌 설화 베껴 적고, 거기에 혼자 열광해서 듣기 싫다는 사람한테도 열심히 이야기 들려주던 사람이다.


  반쯤은 학자의 책이다. 원래 학자가 쓴 책을 읽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머리 한 구석이 딴 생각에 잠기는 법이다. 머리 왼쪽으론 책을 읽었고, 머리 오른쪽으로는 ‘똑같이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임에도 저자들과 나는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른가’를 생각했다.


  일, 이야기꾼과 학자. 아마 이야기꾼과 학자 사이에 기자가 있을 것이다. 기자 중에도 이야기꾼 같은 기자가 있는가 하면 학자 쪽에 가까운 기자가 있다. 나는 이야기꾼에 한 발 걸친 기자다. 이야기꾼은 거리에 고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만족한다. 그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책을 쓴 두 분 중 한 분은 학자, 다른 한 분은 학자 같았던 기자다. 학자는 개념을 규정하려 든다. 그는 서울의 시작이 언제인가와 같은 문제를 묻는다. 기자는 뉴스를 만들고 제목을 뽑고 싶어 한다. 그는 서울의 시작은 조선 개국도, 한성백제도 아니고 1104년 남경 행궁 완공이라는 ‘야마’에 만족해한다. 실제의 저자들이 이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책 행간에서는 학자와 기자 사이의 대화, 때로는 다툼이 읽혀진다. 그 논의나 갈등이 실제 저자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것인지, 또는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각각 진행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 내용과 관계없이 흥미롭다.


  이. 종로구민과 마포 주민, 또는 중인과 상인. 서울, 하다못해 사대문 안을 다 다루는 것도 아니고 옛 이야기만 나오는 것도 아니니 ‘오래된 서울’이라는 제목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책은 서촌에 집중하면서 다른 지역은 다음 권이 나오면 그때 다루겠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저자들이 사라져간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서촌은 여전히 굉장히 개성이 강한 동네다. 단순화시킨다면, 북촌은 몇 백 년째 학자와 사대부의 동네고, 서촌은 예술가와 중인의 동네라고 본다. 두 동네는 고상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개성은 나와 맞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가 사는 마포구 현석동과 신수동 일대가 좋다. 나루터(마포)와 쌀 창고(광흥창)와 옹기 만드는 독막(지금 독막로의 기원), 솥 만드는 무쇠막(신수동의 ‘수’자는 수철·水鐵의 준말이다)의 장사치들이 살았던 동네가 내가 살 동네다. 이상 윤동주 노천명 이중섭 같은 서촌 주민의 이름은 내게 너무 버겁다. 문인 모임에 나가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편하고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다.


  삼. 산세를 읽는 사람과 스카이라인이 친숙한 사람. 책에는 1929년과 2009년 같은 위치에서 같은 방향으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을 촬영한 장소를 알아맞힌다면 서울을 정말 잘 아는 거라고 한다. 나는 보고 알았다. 그런데 책에서 힌트라고 제시한 산봉우리들을 보고 안 게 아니라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을 보고 알았다.


  평생을 콘크리트 위에서 보내고 콘크리트를 편하게 여기며 심지어 그걸 사랑하기까지 하는 나와, 아버지뻘인 두 저자가 도시를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거창하게 확대해석하면 이것이 자연과 전통에 대한 태도, 그리고 세계관의 차이에까지 이른다. 상수동 거리나 가로수길은 죽은 거리인가, 아니면 기존 거리는 담지 못했던 새롭고 재미난 정보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오가는 흥미진진한 공간인가. 거리의 역사와 아름다움은 시장에서 거래되지는 않지만 지켜야 할 가치인가, 아니면 아름답고 흥미롭기는 해도 불꽃놀이나 벚꽃처럼 생겼다가 스러지는 데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할 짧은 현상인가. 신흥 상권의 세력 확장은 도시 문화에 대한 위협인가, 아니면 거기에서도 새로운 미학을 찾아야 할 것인가.


  사. 완벽주의자와 적당주의자. 태종과 세종의 잠저를 찾아보는 것까지는 나도 비슷한 책을 쓴다면 해볼 듯한데, 정선의 그림을 보고 앵글을 추정한다거나 고려시대 남경역의 상상도를 그리는 일은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이 집요함과 꼼꼼함에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는 심정도 들지만 거기에 압도되는 느낌도 든다. 고급 중식당에서 불도장과 샥스핀을 먹으면서 속으로 탕수육과 볶음밥을 그리는 기분도.


  한 줄로 평하자면 아주 좋은 책, 나와야 하는 책이다. 후속편이 계속 발간돼 서강나루 일대를 다룬 편도 나오면 좋겠다. 책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쓴 독서감상문은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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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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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의 저력과 한계를 깨닫는, 다소 기묘한 독서 경험이었다.
  저력은 이렇다. ‘문체 참 고리타분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어느 새 내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책에 몰두해 100페이지 가까이 읽어냈음을 깨닫곤 했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한계는 이렇다. 책장을 다 덮은 다음에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어떤 감흥도 들지 않았다. 존경심도, 연민도, 친밀감도, 인간적인 흥미로움도, 반발심도 생기지 않았다. 수돗물 한 컵 마시고 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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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급 슈퍼 영웅 NFF (New Face of Fiction)
찰스 유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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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유의 데뷔작 제목이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고 이 책의 번역자가 SF 동호인이어서, SF인 줄 알고 읽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편 두 편이 SF 형식을 빌렸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흥미롭고 참신한 실험들이 몇 부분 있었다. 그러나 예술에서 실험적인 시도가 대개 그렇듯이 말장난처럼 보이거나 지루한 대목도 많다.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치기와 스타일 때문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책을 읽을 때만큼 푹 빠져 읽지는 않았다. 10대 후반이었던 나와 30대 후반인 나의 차이라기보다는, 그냥 찰스 유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차이라고 본다. 아시안이고 이공계라는 점, SF를 좋아한다는 점, 낮에 밥벌이를 따로 하고 자투리 시간에 소설을 쓴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조금 느꼈다. 표제작 <3등급 슈퍼영웅>은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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