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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
이정훈 지음 / 비엠케이(BMK) / 2017년 4월
평점 :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현대인의 독서습관 중 경계해야 할 것은 '책을 욕망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욕망의 시선을 과정보다는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성과를 보장한다는 떠들썩한 기법이나 수단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열병처럼 앞다투어 책을 찾는다.
책을 욕망하는 태도로는 깊이 읽을 수 없고, 많이 읽더라도 무엇을 왜 읽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결국 읽어도 읽은 것이라 할 수 없다. 나 또한 몇 년 전 경쟁적으로 읽기에 몰입해가던 중,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의 본질은 읽기다. 읽기라는 인간 고유의 창의적 행위는 자발적 동기가 전제될 때 의미가 있다. 좋은 마음, 즐기는 마음으로 읽을 때, 정신의 눈은 깊어지고 예리해진다. 그러려면 절대 무리하게 읽어서는 안 된다.
'책'은 눈으로 읽고 머리로 사고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읽지 않으면 책은 그저 종이뭉치에 불과하죠. 책장에 잠들어 있는 책들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일 뿐이고요.
대개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책이 아니라 '글'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읽는 것입니다. 독서란 읽고 질문하고 반문하는 사고 과정입니다. 도로로 비유하자면 일방통행이 아니라 양방향 차선인 것이지요. 그래서 독서를 독자와 저자 사이의 대화라고 합니다. 대화가 되려면 그 사이에 질문이 끼어야 하죠. 읽기의 본질은 질문을 찾는 겁니다. 즉 책=질문인 셈입니다.
그러부터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내 나이도 이제 마흔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주위의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으니,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 독경소리다. 30년 넘게 한 권을 반복해서 읽어 오신 어머니에게 항상 같은 천수경을 읽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매번 새롭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답변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만번은 읽었을 법한 책을 두고 새롭다 하신 그 뜻을 처음에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책이란 깊다. 한 권의 불경에 담긴 삶의 도리와 이치의 깊이는 삼십 년간 만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바닥에 닿을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까닭에 새벽을 깨우는 청아한 어머니의 독경소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책에 따라서는 반복해서 읽을수록 마음에 새겨지는 문장들이 있다. 책을 처음 읽는 초독이 전체적인 내용과 눈에 들어오는 정보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면, 두 번째 읽기부터는 탐독을 한다. 차분히 이곳저곳을 참험하듯 책을 읽는 것이다. 탐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읽어가면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다. 빈 노트 중간에 세로줄을 그어 좌우 면을 나누고서 왼쪽에는 내용을, 오른쪽에는 느낌을 적는다. 왼쪽 면에는 몰랐던 사실이나 생소한 용어, 단어,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을 필사한다. 오른쪽에는 내용의 배경을 조사하거나, 생소한 용어는 사전적 의미를 확인하여 기록해 둔다. 좋은 문장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노트에 같은 주제로 짧은 글을 써본다.
소독(小讀)은 기술이라기보다 글을 대하는 철학에 가깝다. 느리게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것, 여유 있게 읽고 사색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것이 읽기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고통받고, 고통 받기 싫어서 벌어야 한다는 딜레마가 찾아오는 아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나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 일하는가, 왜! 사는가, 왜! 먹는가, 왜! 사랑하는가, 왜! 고통스러운가, 왜! 두려운가,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명작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차분히 책을 펼치고 호흡을 따라 발걸음을 맞추는 것만으로 족하다. 우리에겐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원인은 결핍이 아니라 과일 때문이다. 느리게 걷는다 해도 도착이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읽기 습관이다. 책을 빼앗길까 두려웠던 세종은 품 안에 책을 숨겨두고 아버지의 눈을 피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안다고 생각했던 내용이 백 번을 읽고 나니 진정 그 뜻이 보인다고 했다는 세종의 경험담은 '양'이 아니라 '깊이'에 읽기의 답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