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학교는 동학2대 교주이신 해춸 최시형 선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사꾼이자 동학교도이자 군사이기도 한 농민들에게 해월 선생은 보따리 개념을 도입했다는 게 김재형 대표의 설명이다. 호미나 주먹밥을 싸면 농사 보따리요, 칼이나 창을 싸면 개인 군장이요, 베고 자면 베게요, 덮고 자면 이불이다. 이 보따리 개념은 농사철에는 농사짓고, 봉기하며 싸우던 당시 농민군들에게 인내천도 가르치고 요즘말로 민족자주인 척양척왜도 가르치는 개념으로, 동학의 지도자로서 아주 잘 착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난 말이 7년이지 처음 시골 왔을 때나 7년이 지난 지금이나 초보 농사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처음처럼' 살고 있다. 여름에 고춧모를 심고 고춧대를 안 세운다고 앞집 팔순 할아버지가 보다보다 딱했던지 고춧대를 백여 개나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며칠동안 땡볕에 비적비적 풀을 매는 걸 보고는 5천원짜리 농약 한통이면 잡풀을 말끔히 잡을텐데 젊은 사람이 참 독하다고 그런다. 돈 아까워 농약 못사는 줄 아시는 거다.
사람들은 탄저병이 동네 고추밭을 뭉개 버릴 때도 잡초들과 어울려 싱글벙글 의연한 우리 고추가 농약과 비료를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란 걸 모른다. 우리 밭에는 무당벌레나 땅개, 거미, 지렁이가 우글우글하면서 나 대신 해충들을 물리쳐 주고 땅도 일구고 한다. 잡초들은 가뭄이 들어도 수분을 보존시켜 주면서 작물들을 말라 죽지 않게 하니까 스프링쿨러니 하는 것으로 일부러 물을 뿌린 적이 없다. 고추 모종 옮길 때는 고춧대를 안 세우고 그냥 두면서 뿌리와 줄기를 먼저 키우는 것이라는 걸 할아버지들에게 어떻게 설명 드릴 수가 없었다. 나는 밭농사 중심으로 자급 위주의 유기농을 하고 있다. 기업형 대농이 아니라 가족형 자급농을 가장 이상적인 농사로 정하고 있다.
메주나 청국장이 잘 뜨려면 누룩 곰팡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 누룩 곰팡이는 공기 중에도 있지만 볏짚에 많다. 너무 건조한 볏짚의 곰팡이는 활동을 못하지만 이제 막 만들어낸 메주나 삶아 건진 청국장콩 같은 습기 있는 음식을 볏짚으로써 감싸 놓으면 기가 막힌 발효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룩곰팡이는 40~45℃에서 잘 자라며, 단백질 분해효소나 당화효소 등의 효소가 있어서 소화율이 높다. 그래서 청국장을 띄울 때 콩 사이사이에 볏짚을 넣고 띄우면 아주 잘 뜬다. 아마도 볏짚의 이런 성분이 민속신앙과 주술적인 행사에 볏짚을 사용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혼자 짐작을 해 본다. 아내도 그랬겠지만 나도 생명농법이니 태평농법이니 하는 설명을 포기했다. 밭도 안 갈고 괭이로 구멍만 파서 감자씨를 넣은 우리 밭은 풀만 무성해지고 있었으니 할아버지 눈에는 올 우리 집 감자농사는 영락없이 실농하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시골집 마당까지도 죽음의 회색 시멘트가 뒤덮여 있고 산골짜기 밭은 비닐로 숨통이 막혀 있다. 땅이 죽으면 그 위에 어떤 생명도 살 수가 없다.
아이쿠 지렁이가 내 괭이에 두 동강이가 났다. 순간적으로 괭이를 놓고 지렁이를 살폈다. 흙으로 묻어 주었다. 흙 속에 묻어 주면 잘린 지렁이도 살아나는 법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1년 동안 800kg의 거름을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렁이 몸뚱이는 그냥 흙이 통과하는 통이다. 흙이 지렁이 몸통을 통과하면서 좋은 무기물로 변한다. 7년 동안 생활부산물 이외에 일부러 거름을 우리 밭에 준 적이 없지만 해마다 풍년이 드는 것은 이 지렁이 공로가 크다.
괭이를 잘못 놀려 지렁이를 잘라 버려도 죽지 않고 산다. 잘린 양쪽이 각각 앞 뒤 부분을 만들어 내어 두 마리로 변한다. 무서운 생명력이다. 하지만 표피는 어찌나 부드럽고 연약한지 한동안 햇볕에 노출되어 자외선을 쬐기만 해도 죽어버린다.
오늘도 세상 부모님들에 대한 불효자들이 우리 마을에 전원주택을 짓고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다. 마당까지 아스팔트를 깔아대면서 도시를 망쳐먹은 자들이 시골까지도 망치고 있다.
이처럼 이 가을에 농촌에서 새로이 잉태되는 생명의 기운이 있다. 확연하게 생동하는 생명의 움직임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생명역동농업, 생태농업, 환경농업이라고 부른다.
옆 동네에서 농사짓는 친구네는 일년 전기세가 2만원이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컴퓨터가 없다. 읍내에 가면 복지회관이건 면사무소건 인터넷이 다 무료다. 나는 얼마 전 한번도 보지 않고 서재를 가득 메웠던 천 권이 넘던 책들을 다 나눠져 버렸다. 책도 안 산다. 도서관에 가면 신간서적이 가득하다. 요즘은 도서관에 CD도 있고 비디오도 있다. 옷을 안 산지는 5~6년이 넘고, 양말도 기워서 신는다. 바느질이 너무 재밌다. 성당 바자회에 가면 한두 번 입다만, 흔히 한물 간 스타일이라는 멀쩡한 고급 옷이 단돈 500원이다.
관행과 남의 시선을 위한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귀농이다. 삶의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는 것이 귀농이다. 자동차를 위해, 핸드폰과 최신 사양의 컴퓨트럴 위해, 비어있는 시간, 비어있는 공간이 더 많은 아파트를 가지기 위해 자기 인생을 소진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귀농한 농부의 삶이어야 하리라. 또 그것이 가능한 곳이 농촌이어야 하리라. 그럴 때 우리는 생명의 원척인 농촌, 농업의 경제외적인 가치 즉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외칠 수 있으리라. 그런 농부들이 만드는 생명의 ㅣ먹을거리들을 덥석 사 먹는 도시인이 그립다.
나는 가급적이면 빈 농가 고쳐 살 생각이다. 돈도 돈이려니와 텅텅 비어 있는 집들이 있는 마당에 황초집이다. 통나무집이다 하면서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은 낭비란 생각이 들고, 아무리 생태건축을 한다 해도 자연에 대한 훼손을 막을 길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대한 사치와 거품이 우리 생활에 스며 있다는 평소의 생각도 한몫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십여년 이상 비어 있는 집을 주인들이 팔지 않으려고 한다. 막연한 노후 구상이 집터와 집을 십수년째 방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비로 고쳐 살게 해달라고 해도 선뜻 내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