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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우울증과 전쟁 중
조하리.허준혁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25년 5월
평점 :
“우울증은 혼자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 단단하고 조용한 진실에서 시작된다. 아내 허양의 시점과 남편의 시점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이 기록은, 단순한 병의 증상이나 극복기를 넘어서 삶의 균열과 관계의 온도를 치열하게 비춘다.

허양은 누구보다 꿈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R&D 연구직으로 일하던 그녀는 늘 먼저 출근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임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녀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버티는 나날을 시작한다.

책의 첫머리부터 끝까지 흐르는 정서는 ‘회복’이 아니라 ‘존재의 이해’다. “회사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정신과 선생님의 말은 허양에게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에게도 강렬한 전환점이 된다. 사회적 성공의 이면에서 무너져 내리는 감정의 붕괴, 그 안에서 여전히 괜찮은 척하며 버티는 여성의 내면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남편의 서사가 병렬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아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그는 “아프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라고 말한다.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도우려 하지만 서툴기만 한 그의 모습은 오히려 독자의 감정을 더 깊이 끌어들인다. 허양이 잠만 자고, 약을 먹고 다시 자는 반복 속에 무력해지는 자신을 느낄 때, 남편은 아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로 이직을 자청하고 함께 흔들린다.

책은 총 4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만두기로 했다”, “퇴사는 했고, 나는 아직 나아지지 않았다”, “쉬는 게 참 어렵다”와 같은 챕터 제목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우울증은 단순히 치료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그 병을 겪는 사람뿐 아니라 함께하는 이들의 서사 역시 반드시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은 ‘누군가 나에게 선택하라고 하지 않고, 그만하라고 말해줘서 감사하다’는 문장이다. 우리는 종종, 회복도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믿음이 얼마나 가혹한 잣대가 될 수 있는지 조용히 일러준다.

『오늘도 우리는 우울증과 전쟁 중』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걸리지 않기 위한 예방책도 아니고, 그 병을 이겨내는 정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옆에서 말없이 함께 버티는 누군가’에게,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했던 관계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누구도 완전히 낫지 않은 채로, 그러나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도 당신은, 누군가의 전쟁터에 함께 있어 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