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책을 읽지 않는가

 

국어 시간 초반에 책을 고를 때,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요즘 다양한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나의 책 읽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목록에 있는 책에 대한 설명을 위주로 고르고 있었는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 제목은 무슨 뜻이지?’와 같은 궁금증이 생겼다. 책 소개에는 SF 소설계의 명작이고, 과학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한 책. 한 편 한 편 완성도가 높고 빠른 전개와 새로운 설정으로 몰입도 또한 높은 편인 책이라 적혀 있었다. 책 소개 글을 읽으니 약간 기대되면서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긴 고민 끝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기로 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표지의 디자인이 독특해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책의 내용과 어떻게 연관이 있을지 궁금했고, 한 사람이 살아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쓴 책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를 다룬 책인 것을 알게 되었고, 독특했던 책 표지 디자인의 정체는 책의 8가지 이야기 중 한 이야기에 나오는 외계인의 언어를 이용하여 만든 표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목의 의미와 표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책을 읽으니, 이 책을 읽었을 때 몰입도가 더 높아졌다.

 

·퇴근길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글쓴이인 테드 창의 상상력에 연신 감탄했다. 이 책을 읽고 테드 창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져 찾아보니, 테드 창은 현존하는 최고의 SF 소설가이며 전 세계 과학 소설계의 보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소설가이고, 동시대 과학소설 작가들의 인정과 동시대 과학소설 독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작가로 휴고상을 4, 로커스상을 4, 네뷸러상을 4번 수상했다고 여러 책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서술하고 있는 작가였다. 나도 여러 책과 소셜미디어에서 말한 것처럼, 테드 창은 상상력과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고 철학적이며, 글쓰기 실력까지 출중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책에 과학적인 내용과 철학적인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수준이 높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외계인은 지구를 침략하고 인간을 해하는 존재, 지구의 불청객과 같은 존재인데, 이 책에 나오는 외계인 헵타포드는 우리 인간만큼이나 지적 능력이나 문명이 발달하고,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단순히 관찰하고 싶어서 온 관찰자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또 헵타포드는 헵타포드들만의 언어인 헵타포드어를 쓰는데, 헵타포드어의 구성 방식이나 원리, 모양새도 신기했고, 주인공이 헵타포드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이 책의 특징을 더욱 잘 살린 설정이라고 느꼈다.

사실 처음에는 공상과학 소설이 생소하고 읽어본 적도 없어서 잘 읽을 수 있을까, 어렵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내용 이해가 전체적으로 되고 나니까 그다음부턴 순조롭게 읽혔고, 모르는 단어도 많이 나왔지만, 문맥의 흐름에 맞게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또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과학적 용어들은 중간중간 찾아보고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식으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이런 분야의 책도 읽을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과정이 마치 출퇴근길 도로였다고 생각한다. 보통 출퇴근 도로는 아주 혼잡하다. 많은 차들이 비슷한 시간대에 모여들어 막히고, 또 잠깐 잘 가는 듯해도 다시 막히다가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때면 좀 나아진다. 나는 이 책이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분야의 책이었고 어려운 책이어서 처음에는 멈칫했지만 결국에는 도전해 보기로 했고, 책을 읽는 초반에는 한꺼번에 많은 내용이 쏟아져 나와 머리가 과부하 되고 내용 이해가 잘되지 않을뿐더러, 과학적 용어와 어려운 어휘들이 나와 전체적인 책 읽는 속도가 느렸지만, 얼추 내용 이해가 되고 몇몇 용어들을 익힌 후에는 끝까지 꽤 순조롭게 읽혔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과정을 생각하면 출퇴근길이 떠오른다.

 

마요네즈

 

루이즈 뱅크스가 미래를 기억하는 장면 중에 루이즈와 딸의 사소한 갈등이 큰 갈등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있었다. 루이즈와 딸이 함께 백화점을 가는데, 딸은 엄마와 같이 백화점에 있는 게 창피해 루이즈에게 떨어져 있으라는 등의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는 장면이었다.

엄만 신용카드만 빌려주면 돼. 두 시간 뒤에 저기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안 돼. 신용카드는 내가 가지고 있을 거야.” “알았어, 엄마. 엄마도 같이 가. 내 뒤로 조금 떨어져서 걸으면 동행처럼 보이지는 않을 거야. 혹시 가다가 친구라도 만나서 잠깐 얘기하거든 엄마는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쳐줘.” “뭐라고? 난 네 하인도 아니고, 같이 다니면 창피한 돌연변이 친척도 아냐.” “하지만 엄마, 난 내가 엄마하고 다니는 걸 누가 보는게 싫어.”

루이즈는 딸이 자신과 쇼핑하러 가는 것을 즐기던 것이 그리 오래전의 얘기가 아니고, 항상 예상보다 빠른 딸의 성장 속도에 놀라며 씁쓸해한다. 나는 이 장면이 루이즈와 루이즈의 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읽고 1999년에 나온 영화 마요네즈가 생각났다. 영화 마요네즈에서는 통상적인 어머니상에서 벗어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계속 밀어내는 딸 사이의 갈등을 다룬 영화이다. 엄마는 머릿결이 고와지려고 마요네즈를 바르고, 아버지가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는 엄마다. 그 딸은 마요네즈의 역겨운 냄새와 함께 엄마에 대한 이해와 동정은 환멸로 바뀌고 엄마에 대해 진실한 정을 느끼지 못한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상당히 달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소재가 엄마와 딸의 갈등이었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의 친구 대부분도 엄마와 갈등이 생겼던 경험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엄마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누구나 있다. 엄마와 우리는 항상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난 이 책의 일부분을 읽으며, 모녀 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편한 사이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가 모녀 관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엄마를 무조건 이해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즈의 변화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가 헵타포드의 언어, 헵타포드어를 배우며 변화하는 과정이다. 루이즈는 헵타포드 B’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기 전엔 기억이 순차적인 현재에 머물러 있었지만, ‘헵타포드 B’를 습득한 이후 그녀의 기억은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녀의 세월 전체를 동시에 자각하게 되는데, 루이즈가 이것이 그녀의 남은 생애와 그녀 딸의 모든 생애를 포함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슬프기도 해서 인상 깊었다. 루이즈의 딸은 암벽을 타는 도중에 추락해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루이즈도 함께 암벽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딸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근육 하나도 까딱할 수 없다. 루이즈는 딸이 눈앞에서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루이즈는 발화 형태가 없는 헵타포드어를 배우는 것이 기묘한 체험이라고 말한다. 루이즈는 이 헵타포드어를 배우면서 발음을 연습하는 대신, 눈을 질끈 감고 눈꺼풀 안쪽에 어표들을 그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명상 상태에 빠져 전제조건과 결론을 호환하는 방법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을 때도 생긴다.

루이즈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언어학자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헵타포드 B’를 연습했다. 의미표시 언어를 읽는다는 새로운 경험에는 헵타포드 A’와는 달리 사람을 매료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각 명제 사이의 관계에 고유한 방향성은 없었고,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사고의 맥락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유에 관여된 모든 요소의 힘은 동등했고, 모두가 동일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204p

루이즈는 헵타포드어만의 특이함과, 모든 요소의 평등함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루이즈가 쓰는 문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모양이 좋아지고 더 면밀해졌다. 문자를 쓰기 전 신중하게 생각해 구도를 결정하는 대신, 즉각적으로 획을 긋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또한 루이즈는 게리와 페르마의 원리에 관해 이야기하며, 헵타포드어를 어떻게 익힐지에 대한 방법을 깨달았다. 페르마의 원리는 빛의 경로가 언제나 최소 시간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로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페르마의 원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빛이 이전의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 없다. 그런 행위에서 야기된 경로는 가장 빠른 경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은 처음부터 모든 계산을 끝마쳐야 한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페르마의 원리가 헵타포드어를 배우는데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 헵타포드어를 쓰는 것은 빛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과 같다. 빛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 다음 진로를 수정하면 가장 빠른 경로로 갈 수 없는 것처럼, 헵타포드어도 한번 쓰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않아야 하고, 빛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기 전에 처음부터 모든 계산을 끝마쳐야 하는 것처럼 헵타포드어도 쓰기 전에 미리 완성된 모양을 생각해야 한다.

루이즈는 언어학자이지만 자신이 헵타포드라는 외계인의 언어까지 연구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고 어떻게 보면 위험하기까지 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오히려 흥미를 느끼면서 연구에 최선을 다한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나는 페르마의 원리와 헵타포드어 습득 사이에 이러한 공통점이 있을 줄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의 변화

 

이 책을 읽으면서, 루이즈뿐만 아니라 나도 변화했다고 느꼈다. 평소에 몰랐고 관심 가지지 않았던 페르마의 원리논 제로섬 게임‘, ’세월의 책과 같은 새로운 용어나 과학 지식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이 책이 내가 주로 읽던 책보다 수준이 높은데,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제 나도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SF소설 장르는 읽어본 적이 없어 걱정했는데, 이 책을 읽고 SF소설 장르의 책을 더 많이 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인 외계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외계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뉴스나 책에서 가끔 외계인과 UFO에 대해 나오면 단순히 인간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거나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우리는 외계인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우주에 있는 그 수많은 행성에 모두 가보지 않았고, 또 가볼 수도 없으므로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우리가 평생 닿을 수 없는 곳에 외계인이 살 수도 있고, 어쩌면 보이지 않게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외계인을 실제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정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계인에 대해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외계인에 대해 단순히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독서의 바람

 

당신 인생의 이야기중 특히 네 인생의 이야기는 과학이나 언어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추천한다. 주인공인 루이즈가 언어학자인데, 헵타포드어를 배우게 되면서 하나씩 깨닫는 것이 읽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것이 많고, 과학적인 요소들이 책 중간중간 등장하기 때문에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읽으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나는 왜 요즘 책을 읽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바쁘다는 핑계를 가지고 책을 멀리했는데, 그냥 귀찮고 재미없어서 읽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항상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과 루이즈처럼 한 가지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열중한 적이 없다는 것 등의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책을 읽어야 하는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서평을 쓰면서 깨달았고, 한 가지 책을 깊이 읽어본 것도 새로운 경험이어서 서평 쓰기나 독서기록장 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어보고 싶기 때문이다.‘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나 스스로 깨닫게 해준, 내게 의미있는 책이고, 앞으로 나에게 독서의 바람이 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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