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개의 시간
카예 블레그바드 지음, 위서현 옮김 / 콤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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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개의 시간>(카예 블레그바드, 콤마)은 제목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되게 만듭니다. 검정색 표지에 황금색으로 표현된 ‘꽃을 물고 달려가는 날렵한 개’의 모습은 ‘나’와 ‘개’의 관계를 상상하게 됩니다. 보통 애완견을 부를 때 이름으로 칭하지 ‘개’라는 종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입니다.
첫 장을 펼치니 의자에 앉아 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여자와 덩치가 큰 검은색 개가 보입니다. 이책은 ‘블랙독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저자 소개와 해설을 보지 않고, 그림책을 봐도 끝부분에 가서는 실제로 키우는 애완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 저자 카예 블레그바드는 자신이 겪었던 우울증을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던 ‘블랙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랙독’이라는 단어는 ‘많은 작가들이 우울증의 별칭’으로 사용해 왔다고 하니, 어떤 독자는 책의 첫 장만 봐도 ‘블랙독’의 정체에 대해 짐작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은 예고도 없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챕니다. 물론 무시할 수도 있고, 전문가에게 찾아가거나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이 시기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몇 번 겪었던 일이라면 ‘아, 또 그 시기가 찾아왔구나.’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에 대해 정보가 많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 못하거나 알아도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네가 편하게 살아와서 나약한 말을 하는 것이다. 의지가 없어서 그렇다.’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겪어봐야 배려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블랙독’이라는 우울증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한 사나운 ‘블랙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수십 년의 경험을 압축해서 풀어놓고 있습니다. 작가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블랙독을 무시하다 공격 받은 일, 블랙독이 일상의 관계를 어그러뜨린 일, 작가의 예술적 작업에 ‘블랙독’이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었던 일,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블랙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일까지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상세한 설명보다 ‘그림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그림책이 독자에게 직관적인 지혜를 알려주고, 위로를 주고 내면의 힘을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블랙독’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과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론 너무 혼란스럽고, 무엇인가로 가득 차서 내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지긋지긋한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고, 풀어보지 않은 보물 상자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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