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 - 살기 싫어 몽테뉴를 읽었습니다
이승연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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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싫어 몽테뉴를 읽었습니다. 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 이 긴 제목이 몽테뉴, 수상록을 전혀 모르던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살기 싫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고, 그러한 마음을 극복했는지 궁금했다.
부모님의 죽음과 오빠의 암투병, 경제적 어려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그랬었구나, 그럴만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가에게 의지가 된 것은 16세기 철학자 몽테뉴의 수상록이라고 한다. 수상록은 ‘에쎄’라고도 불리는데, 우리가 아는 ‘에쎄이’의 장르의 시작이라고 한다. 몽테뉴는 20년 동안 매일같이 글을 썼는데, 이 방대한 분량을 세 번 읽는데 반년이 걸렸다고 한다. 몽테뉴를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 저자. 난 아직까지 그런 작가나 저작을 만나지 못했지만, 수상록에 대한 그녀의 삶이 엮어진 글을 보면, 영혼의 동반자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서문에서 저자는 ‘줄리엣과 줄리엣’이란 영화를 소개하며(삶의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줄리엣’이 유명한 요리사 줄리엣이 쓴 요리책의 요리를 하며 삶이 바뀌는 이야기), 자신은 ‘몽테뉴’를 만난 것이고, 꼭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나도 내가 만날 어떤 사람이나 작가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저자가 말하는 몽테뉴에 대해 관심이 갔다. 일종의 대리만족??
부제 ‘...나의 삶을 사랑하는 10가지 방법’을 보며 특별한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 같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명심하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그래 알고 있지만 그냥 듣고 흘려버리는 것들. 그런데 어찌 보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어르신들이 보기에 내가 아직 젊지만 나름 지금까지 산 인생을 돌아보면, 그 고리타분한 이야기 중에 맞는 것이 많았다. 일종의 삶의 지혜랄까. 꼭 삶에서 겪고 있을 때는 모르거나 무시하는데, 지나서야 나이 들어서야 ‘아,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일찍이 그 지혜를 들었겠지만, 이제야 내 성질을 알아 중용과 절제의 미덕을 배워야겠구나 싶다.
'무항산무항심. (중략) <맹자>에 나오는 말인데 일정한 생업이나 재산이 없으면 바른 마음을 갖기 어렵다는 말이다. (중략) ‘무항산무항’은 몽테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부족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넘치는 것 또한 경계한다는 것.’(p.152)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잠언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단락이다.

‘행복 또는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우리의 마음이다. 그 자체로서 해롭거나 어려운 것은 없다. 우리의 마음이 약하고 비굴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위대하고 고매한 일들을 판단하려면 그만큼 위대한 마음이 필요하다.’(p.157)
‘우리는 사람들의 의견을 좇아 볼품만 꾸미다가 자신의 진짜 이익을 사기당한다. 우리는 우리 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가보다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져 있는가에 더 신경을 쓴다. (중략) 자신에 만족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존중하고, 자기가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점을 인정하는 자들은 우리보다 총명하지는 못할지라도, 참으로 더 행복한 자들이다.’(p. 164)

이 책은 몽테뉴의 글과 작가의 글이 번갈아 나온다. 몽테뉴의 글을 자신의 삶에서 풀어냈다고 할까. 난 딱딱한 글은 체질에 맞지 않아 요렇게 ‘고전-현대’가 엮인 책을 ‘고전’보다 선호한다. 자기계발 서적처럼 각종 ‘~하라’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좋아한다. 책 부록으로 삶을 사랑하는 10가지 방법과 ‘함께 보면 좋은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오베라는 남자, 인턴, 윌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처럼 이미 봤던 영화도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 때문에 보지 않았던 것들도 있었다. 저자가 소개한 ‘방법’의 관점에서 다시 영화를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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