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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학 - 고광률 장편소설
고광률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1월
평점 :
시일야방성대학. 눈에 띄는 제목이다. 1905년 장지연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황성신문에 비판한 글 ‘시일야방성대곡(이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이 떠오른다. ‘이날, 목 놓아 대학을 부르짖다’ 쯤의 의미가 되려나. 책 앞 장에 주요 등장인물 25명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는데, 이름들이 범상치 않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랄까. 그러나 그 이름의 의미를 유추해 내기엔 내 지식이 부족하다.
총 3부로 구성된 소설(1부 부실대학, 2부 학생 중심 대학, 3부 모도일의 대학). 1부가 시작되기에 앞서 앤 월슨 섀프/다이앤 패셜의 저작 [중독조직]에서 발췌한 부분이 실려 있다. 중독 조직. ‘내부에서만 돌아가는 중독 시스템으로 경직되고, 부정직해지며,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으려 하기에 병이 더욱 깊어진다. 전체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부분으로 해결할 수 없고, 소모적이며 파괴적인 세계관’이라는 설명이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고병률 작가님은 중독 조직인 대학을 어떻게 그려내시려는 것이기에 이렇게 도입부가 무거울까.
일광대학 의대 학생들의 시위에 토요일에도 일사 분란하게 출근한 교직원들. 학생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목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모도일 총장도 마치 국가 비상 사태시 대통령이 경호를 받는 것처럼 도서관에 위치한 총장실로 들어간다. 이런 사태에 대비한 ‘위기 대응 매뉴얼’도 있는 상황. 허...
일광대 설립자의 외아들 모도일 총장과 그에 대척점에 있는 일광대 설립 공신인 영상철학과 교수 주시열. 주시열 교수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 설립자인 모준오의 신임과 유언 때문이다. 하바드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정치질에 능하지 못한 책상물림 모도일과 능구렁이 주시열의 성격도 한 몫했다.
모도일 총장이 분교를 짓는다며 무리하게 진행하지만 않았어도 부실 대학,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평가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부실 대학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조개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학과 통폐합을 진행하고, 의과대 학생들은 부실 대학을 이유로 총장 퇴진 시위를 벌이고. 총장 및 교직원들은 그 와중에 파벌 싸움을 하고, 교육부는 반값 등록금, 등록금 동결과 지원금으로 대학을 조이고... 그런데 정장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점점 흥미진진해 지는 이야기.
30년간 대학에서 근무했다는 고광률 작가.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살아 있고, 술술 넘어간다. 술술 넘어갈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재는 꼭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는 곳이 넘쳐난다. 심지어 어떤 면에선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 나에겐 대학 졸업장이 하나의 자격증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았었다. 오히려 사회에 나와 다른 공부 공동체에서 배운 것이 많다. 대학이 진정한 대학의 의미를 회복할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