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로 몇 주전 알랭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읽은 적이 있다. 북클럽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절반 정도 봤는데, 예술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는 걸로 완독하지 못한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가끔 전시회를 가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림의 오호만 따질 뿐이어서 위의 책도 그렇지만 이번에 제공 받은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도 읽어 내려가기에 벅찼다.
서문에서는 저자의 예술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는데, 일견 공감되는 바가 있었다. ‘예술의 역할이 엄숙미로 삶의 흥분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자가 귀스타브 모로의 미술관을 관람하며 ‘내가 기억하는 한 바로 거기서 생전 처음으로, 내가 그림 앞에 소극적이고, 순종적으로 서 있지 않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다며 예술을 새롭게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미술의 엄숙함에 대한 나의 추론은 틀렸다.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가끔 더 큰 기능을 한다. 미술은 바로 그 전율이다.’라며 서문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나에게도 이런 전율을 느낄만한 때가 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예술가와 작품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감이 들었다.
목차를 살펴봤는데, 제리코, 르동, 브라크 등 생소한 이름들이 주르르 나열되어 있어, 쉽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나마 학창 시절 귓동냥으로라도 들어본 예술가는 세잔, 드가, 마그리트 정도였다. 목차 막바지에 프로이트라는 이름도 있기에 정신분석가인 프로이트가 예술에도 발을 뻗쳤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아니라 그의 손자 루치안 프로이트였다.
제리코의 재난을 미술로 part에서는 19세기 프리킷 호의 침몰과 조난자들의 끔찍한 생존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처음엔 왜 갑자기 이런 묵직한 글들이 나올까 싶었는데,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이리 저리 작품을 들여다보며 작가의 설명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제리코는 그 순간을 선택해 변형을 가하고 예술로 정당화하여, 위로 솟음과 동시에 아래로 당겨진 그림으로 변화시킨 다음, 유약을 칠하고 액자를 끼웠다. (중략)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한다.’ 걸작은 일단 완성되고 나면 멈추지 않고 내리막길로 이동한다.”
빽빽한 글의 압박을 이기고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긴 하지만 이 책은 꼭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워낙 첫 부분이 기억에 남았지만, 일단 아는 예술가나 책을 휘리릭 넘기며 흥미가 있는 작품이 실린 part부터 시작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한 발짝 예술과 더 친해진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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