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위대한'
개츠비일까?
미국의 1920년대 물질 만능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게 되었다.
작가의
원작을 어떤 사람이 번역을 했는가에 따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래전
위대한 개츠비라는 영화를 봤었다.
명작이란 역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보다라며,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좀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개츠비의 어떠한 면을 보고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가난한 젊은이가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는 거? 아니면 가난한
환경에서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움켜쥐고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부자가 되는 성공 과업을 이루었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처지 때문에 실연당했지만 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간 것?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다시 만난 위대한 개츠비는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개성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이란 과업을
생각할 때, 남들과 동일한 생각을 하고 남들과의 삶의 범주에서 다른 점이 없다면 그것은 위대하다는 표현을 하기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항상
희망을 바라보며 달려온 사람에게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준 개츠비, 상한 감정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다시 도전하는 그의 투지에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난 느낌으로 인생이란 상자의 단면이 아니라 전면이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줬다고 할 수 있다.
"네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에는 언제든 ……" 그분은 내게
말했다.
"이 세상 사람들 전부가 네가 지녔던 이점을 누렸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렴."
-15쪽
여성이 아름다운 외모에 사랑에
빠진 개츠비,
첫눈에
반함 데이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뭘까?
개츠비는
돈이면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돈을 모아 거부가 되었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 앞에 나타난다.
개츠비는
백만장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 데이지의 앞집으로 이사를 했고,
자주
파티를 열곤 했다.
혹시
기다리는 대상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게 되는데,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당신 아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소." 개츠비가
말했다.
"그녀는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소. 그녀는
나를 사랑하오."
"당신 틀림없이 미쳤군!" 톰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개츠비가 강렬한 흥분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분명 미친 말인 것
같지만, 개츠비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녀는 결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알아들었소?" 그는
소리쳤다.
"그녀는 단지 내가 가난했고 나를
기다리기에 지쳤기에 당신과 결혼한 거요. 그건 끔찍한 실수였지만,
그녀는 나 외엔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211쪽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인을 상대로 그것도 그 여인의 남편에게 이렇듯 당당하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개츠비 한 사람외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사랑만 하며 살아도 부족한 세상이라고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한 여인의 미모에 반해 사랑에 빠졌던
개츠비,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도 못하고 결국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데이지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의 죄를 뒤집어 쓰고
결국 죽음을 맞는 개츠비다. 참 어렵고 난해한 작품이라 뭐라고 느낌을 단정 짓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일편단심,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한 죄의 처벌까지 감수한 개츠비의 여인에 대한 헌신과 희생이 대단할
뿐이다.
그동안 고전에 대한 오역이 문제가 되어 다시 출간된 번역서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시작되는 고전 번역의 논쟁과 관련하여 왜 빈번하게 발생하는지 이해를 도와주는 역자 노트가
있어 흥미롭다.


He talked a
lot
about the past,
'그는 과거에 떠들어댔고,'라는 번역,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는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라고 번역했다.
'그는 과거에
떠들어댔고,'에 비하여
'그는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라는 표현이 주는 느낌은 정말 딴판이다.
번역자의 표현에 따라 등장인물의
인상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그동안 무심결에 읽었던 많은 번역서들은 괜찮을지 궁금하다.

세계 유명인들이 아끼고 사랑한 책 「위대한 개츠비」, 빌 게이츠의
경우 약혼식장에서 개츠비 복장을 했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몇 해전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한 바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 「노르웨이 숲」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관계성 좋은 사람을 지향하는 한 사람으로 위대한 개츠비 이 책을 한 두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