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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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보호받고 사랑받겠다는 것이 무리한 욕심일까? 가사에만 전념하던 가정주부가 소문난 살림꾼으로 인정받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집안일에 전념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집안에 머문 까닭에 마을을 벗어나면 뭐든 새롭고 서툴기만 하다고..... 브릿마리는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남편을 믿고 의지하며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냈다. 그런데 세심하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브릿마리다. 청천 벽력같은 사건을 알고 한 집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집을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브릿마리가 난생처음으로 하얀 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다. 일자리를 찾는 일부터 이제부터는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브릿마리에게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부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간단한 일조차도 너무나 서툴고 두렵기까지 하다. 집안 살림을 제외하고 처리해야 할 대소사를 해결해 주던 남편이 없는 빈자리를 감당하기 어렵다던 어떤 분이 떠오른다. 평소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몰랐는데 떠나고 나니 그 자리가 너무 크더라는 이야기였다.

 

최종 학력이 어떻게 되시죠, 브릿마리씨?”

브릿마리는 핸드백을 움켜쥔다.

보면 알겠지만 나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어요.”

하지만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으셨고요?”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십자말 퀴즈를 아주 많이 풀어요, 그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거잖아요.”

(중략)

언제 그 일을 하셨나요?”

“1978년요.”

자신의 경력에 대해 브릿마리의 설명이 이어진다.

매일 남편의 회사 일을 도왔고, 아이들을 챙기고 집을 번듯하게 관리했다고....

-p. 15~16

 

경력 단절녀인 브릿마리가 과연 자신이 할 일을 찾을 수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집안 살림에만 전념하던 주부가 어느 날 알게 된 남편의 불륜 사실에 충격을 받고, 아이들은 장성하여 서로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참견하지 말란다. 엄마였고 아내였던 그 여인은 열심히 헌신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산산조각이 나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자신의 존재감을 찾지 못하며 우울한 시간 속으로 넋 놓고 빨려 들어 가게 되는 스토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시간들이 허송한 시간이었을까?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느냐는 잔인한 가족들의 반응에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더라는 결국이 뻔한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야기였었다.

 

모든 열정은 어린애 같다. 진부하고 순수하다.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기에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를 뒤집어놓는다. 우리를 휩쓸고 간다. 다른 모든 감정은 이 땅의 소산이지만 열정은 우주에 거한다.

열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게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요구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잘난 척 고개를 젓는 그들의 반응.

벤이 골을 넣자 브릿마리는 고함을 지른다. 그녀의 발바닥이 스포츠 센터 바닥에서 솟구친다. 1월에 그런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우주에서 그런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축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p. 382~383

 

그러나 이 책 브릿마리 여기있다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사례와는 달리 돌파구가 있었다. 브릿마리는 보르그라는 작은 마을의 레크레이션 센터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브릿마리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것으로 보르그에서 축구와 첫 대면식을 치르게 되고 보르그 FC 축구팀 코치를 맡게 된다. 평생 가슴 뛰는 일을 모르고 살았던 브릿마리가 드디어 감당할 수 없이 세차게 뛰는 가슴 두근거리는 열정을 찾게 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무력감의 궁극은 죽음이다. 궁극의 절망은 무력감이다.

-p. 415

 

평소 과산탄소다를 잘 활용할 줄 알았던 브릿마리에게 있어서 과산탄소다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그녀가 과탄산소다를 이용하여 지우고 싶었던 것이 일상의 더러움이나 오물을 제거하는 용도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잠시 머물게 된다. 어떻게 보면 브릿마리는 그녀가 익숙하게 살았던 지난날들보다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의 삶이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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