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캠핑을 갔다가 모인 사람들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살아가는
모양이 다른데,
프랑스에 갔을 때 알게 된 일이라고 하면서 그
나라에서 고급술이라고 호일에 포장된 술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소주였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 이상이면 소주를 마실 수 있는데,
값싸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소주는 각종 요리와도
잘 어울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저렴하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술인지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소주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고 살아왔다.
선진국에서 고급술로 통한다는 말을 들었어도 저렴한
값 때문에 소소하게 생각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 소주 이야기에서 알고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주란 정통방식으로 만든 증류식 소주가 아닌 희석식 소주라는 말이 당황스럽다.
소주니까 하고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렇게 먹었던 소주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깊은
이야기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소주의 한자 표기에도 이렇게 다른 흐름이 있었다는
말인가?
조선시대 에 사용된 소주(燒酒)
술집에서 주문하는 소주병에는 소주(燒酎)라고...
즉
전통적으로 내려온 표기는 소주(燒酒),
우리가
알고 있는 표기는 소주(燒酒)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희석식 소주에는
'희석식 소주'라는
표기 대신
주정, 증류식 소주 (쌀국산 100%)
0.1% 라는 표시가 붙어있기도 하다.
-p. 22

1980년대 초반
듣도 보도 못한 스타일의 시 한편이 튀어나왔다.
이름에서부터 '노동 해방(노해)을 표방한 빅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란 시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못가지
-p. 28

얼큰한
찌개를 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소주를 떠올린다.
그만큼 소주는 서민적인 라는
술l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뜨는 맛 집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진행자가
언급하는 소주....,
비록 소주의 맛이 어떻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음식의 문화와도 깊은 관련을 맺은 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주도 시대적 변천사를 거친 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다른 것은 몰라도 술에 대한
인심은 풍부하다고 할 수 있다.
낯선 사람이 청해도 언뜻 건넬 수 있는 것이 술 한
잔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와서 돈을 한 몇 천원 꾸어 달라고
하면 거절을 해도 술 한 잔 주십사 하는 청은 쾌히 승낙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음 속 깊은 이야기도 술로 시작하고 술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가?
우리민족이 수많은 일을 겪었다고 하지만 술이나
음식의 문화도 그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모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일부러 언급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환을 달래며 살아온
소주....
스스럼없는 자리에서 무르익는 숱한 이야기와
건배제의의 모습은 자연스러웠었다.
그러나 술 문화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술잔을 돌리는 모습이다.
병균이 전염될 수 있다는 부담감으로 이제는 각각의
사람들이 개인의 잔을 고수해야 하는 모습....
위생적으로는 바른 모습인데 술을 나누던 사람들의
느끼는 기분은 사뭇 다르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소주를 광고하던 모델들이다.
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나?
참 많은 광고모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좋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인데 그저
술만 마시고 취기가 돌면 사람도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술기운을 빌려
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화평하던 집안은 술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술로 문제를 일으켰으면서 다음날 아침엔
해장을 해야 한다며 또 술을 찾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평소 술을 즐기지 않아 술 먹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술 맛은 잘 모른다.
하지만 적당히 자신을 가눌 수 있게 마시는 술이라면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다.
술 먹고 좋았다는 말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주이야기를 읽는다.
애주가들이 술 먹고 일으키는 불상사만 없다면 무예
그리 걱정일까 싶다.

순한 도수를 찾던 사회적 흐름으로 여길수도 있는
표현이다.
예쁘게 생긴 여배우가 드라마 속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를 시키고
꼼장어 또는 닭발과 우동을 시킨후
잔에 가득 부어 좌악 들이키는 모습이 떠오른다.

누가 가장먼저 떠올린 생각인지...?
너무나 익숙한 표현이라 그저 그러려니하고 지나치게
된다.
비공식이 공식적인 효과를 불러온 매치는 아닐까...

어찌 보면 막걸리에 비해 훨씬 독한 이
소주라는 술은,
태생적인 역사적 비애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증류식/희석식의 구분을 무색하게 하는 내밀한 일이기도 할 텐데 여기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사연이다.
독주(毒酒)는 원래 추운 지방의 술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보드카를 훌훌 마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몸속 피를 잘 돌게 해 추위를 이겨내려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한반도의 북부 지역 사람들 역시 독한
술을 선호했다.
그 지역에서 소주가 인기를 얻는 일은
불가피했다.
남쪽은 따뜻하다.
독한 술이 쉽게 들어가겠는가?
햇볕 쨍쨍한 여름날 알코올 도수
40도짜리 술을 들이켠다고 해보라.
몸속의 피가 빨리 돌아 아마 음주자를 길바닥에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먹던 술은
막걸리였다.
그게 아니라면 막걸리를 한 번 거른 약주
정도다.
그러다 비극이
있었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고,
북쪽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때론 이념을
위해,
사실은 그보다 생존을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그들 실향민의 상심(傷心)을 어루만질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소주는 치유하기 어려운 그들의 상심을
순간적으로나마,
빠르게 마비시켜주는 약(藥)이었다.
게다가 막걸리와 약주가 대세인
남쪽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체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이른바 향수(鄕愁)를 달래주는 수단이었다.
20세기 중반의 현대사를 관통한 소주는 피난민의
술이자 실향민의 술이었다.
비교할 수 없이 강한 농도의 애환과 소주가 결합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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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