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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 Va' dove ti porta il cuore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인생을 끝을 예감하며 홀로 남겨질
가족이 있을 때 당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책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는 죽음을 앞둔 여든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훌쩍 떠나간 손녀에게 보내는 15편의 편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당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겨져 슬퍼할 손녀를 향한 절절한 메시지가 장차 손녀가 돌아왔을 때 할머니 대신 손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쳤단다.
어려운
숙제를 하면서 연필 끝을 잘근잘근 깨무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구나.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내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단다.
걱정
말거라.
설교하려는
것도 아니고,
널
슬프게 하려는 것도 아니니까.
난
단지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
가슴과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 말이야.
우리가
서먹해지기 이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짐이 되곤 하더라.
-p.
26~27
현대 가족의 특성 중 하나가 가족
간의 대화 부재라고 한다.
힘에
버거운 일상 스케줄 때문에 가족이 한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만나곤 하지만,
특히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살아가는 경우 아이를 보며 과거와 현재가 묻어나는 세대 간의 기록은 고스란히 겹쳐져 남겨진 자가 감당할 아픔은 엄청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청소년기
방황과 일탈행동에 그저 묵묵히 말 한마디 못하고 아이를 결정을 지켜보는 일이 할머니에겐 얼마나 큰 걱정이며 안타까움
이었을지…….
할머니는
사랑이라고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아이는 할머니의 진심을 간섭으로 잔소리로 여겼을지 모른다.
나이가 들며 가까운 분들의 부고를
접하게 된다.
얼마 전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상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임종을
지켰지만 목소리를 낼 기력이 없었던 어머니…….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아이에게 들려줄 편지 형식의 글이라도 있다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가족에게 전할 말을 담은 한 권의 책을 기록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가 남긴 메시지는 위로와 감동 그 이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편지 속에 묻어나는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와 불행했던 유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혼란스러웠을 시간들은 당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을 차분하게 수습하기가 어려웠을 거란 짐작을 할 뿐.
노인이 된
어머니가 들려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내
할머닌 어머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삼 년 전에 아들,
그러니까
엄마의 오빠가 폐병으로 죽었어.
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뒤 곧바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
그
아이는 딸이었던 데다가 하필 아들이 죽었던 날짜에 태어난 거야.
그렇게
두 가지 불행한 우연 속에 태어난 내 어머니는 젖을 떼기 전에 상복부터 입어야 했단다.
아기의
요람 위에는 오빠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려 있었어.
눈을
뜰 때마다 어머니는 자신이 오빠의 빛바랜 복사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해할
수 있겠니?
이쯤
되면 냉정하고,
바보
같은 선택 때문에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고 어떻게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니.
이렇게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또 어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될까?
-p.
67~68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35일의 기록인
15편의 편지에는 가부장적 집안에서의
불행했던 성장의 기록이 있었고,
사랑이
없었던 나이 든 남편과의 관계가,
그러나
불현듯 찾아온 사랑을,
결코
밝히고 싶지 않았을 딸의 출생에 대한 비밀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할머니는
결코 불행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중임을 차후 손녀는 알 수 있을 이야기들로 힘겨운 시간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24년간
이 책을 접했던 수많은 엄마와 딸에게 감동과 치유가 되었던 이유는 편지에 담긴 할머니의 사랑과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불행도 진심을 능가하는 일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책에서 소소하지만 어려울수록 견고해지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