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점심시간 - 우리가 가장 열심이었던 날들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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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김선정 작가의 에세이 <너와 나의 점심시간>입니다.

떠올려보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친구의 손을 잡고 부모님이나 통학도우미 선생님의 도움이 없이 내가 사회생활을 하러 가는 최초의 장소가 바로 학교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선정 작가는 『최기봉을 찾아라!』 『방학 탐구 생활』 『우리 반 채무관계』 『멧돼지가 살던 별』 등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동화가 아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에요. 군더더기없이 솔직담백한 문체가 빛나는 책입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매 순간 저런 노력이 어린이의 학교생활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내 자리에서 애쓰듯이 아이들은 아이들 자리에서 온몸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거쳐 이렇게 어른이 되어 서 있다는 것을.」 4쪽

「쓰다보니 이것은 나에 대한 기록도 아니고 어린이에 대한 기록도 아니었다. 어린이들의 삶터고 나의 일터였던 교실, 그곳에서 함께 살던 너와 나에 대한 기록이었다. 너도 애쓰고 나도 애쓰던 그 무수한 점심시간들처럼.」5쪽.

프롤로그에 쓰여있는 글처럼, 이 책은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 안되고 서툴지만 애썼던 '시간'을 기록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한' 오답노트와는 다른, 그 애썼던 시간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었던 책이였어요. 후회와 감탄, 깨달음, 소망, 그리고 미안함... 그 공간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자의 감정을 끌어내는 힘이 있는 책이었어요.


[ 모두가 좋아하는 시간은 아냐] 에서는 모두가 우승하기 급급한 체육시간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관점이 흥미로웠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선생님은 교실의 한 명이라도 외면받거나 상처받을까봐 이런 부분까지 세밀하게 챙겨보시는구나'하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이 결석한 날] 선생님이 결석한 날에 보인 아이들의 반응이 참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서운함도 이해가 되고.

「교실을 별일 없이 유지시키는 것은 "네!"라고 대답한 대다수의 아이들임을 안다.」라고 조금 부분에서 오늘 아침 방송했던 유튜브 [정준희의 해시태그]에서 정준희 교수가 언급한 언론의 문제도 떠올렸다. OX게임에서 진실이나 윤리와는 상관없이 대다수가 O 쪽에 선다면 대세를 따르는 요즘 언론 풍토를 꼬집은것이다. '소신있음'이 눈치없음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의견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만든 우리 어른들부터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1학년이라는 우주] 요즘 1학년들은 학교에 가면 많이 운다고 한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들이 어린 시기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에 단체생활에 익숙해서 안그럴 줄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나보다. 1학년을 몇 번 겪어보고 나서 얻은 특효약은 무엇일지는 직접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른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다]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 역시 작가와 같은 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도저히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영역, 따라갈 수 없는 방대한 그들의 상상력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왠지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어른이라는 것은 무얼까? 이 어린이들을 어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그들을 채우는 것은 나와 뭐가 다를까.

[친구가 혼나면 기분이 좋거든요] 제목을 읽자마자 실소가 터져나온다. 너무나 솔직한 대답 아닌가. 해마다 등장하는 민원 단골 어린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방금 전 어른의 세계와 어린이들의 세계를 분리시켜 생각한 것이 소용없어졌다.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어른들도 다를 바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사회의 법은 오로지 존재하기 위해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규칙과 법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를 심난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요즘이다.

[어린이들의 채무관계] 이 일화는 한 출판사 편집자의 강력한 권유와 격려에 힘입어 『우리 반 채무관계』라는 동화가 되어서 나왔다고 한다. 사소하지만 민감한 문제인 친구들간의 채무의 문제에 대해서 공감할 어린이들과 어른이 많을 것 같다. 관계를 좋게 유지하면서도 공정하게 처리하고 뒤탈도 없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가 아닌가싶다.

[축구장을 사수하라] 어린이들의 세상은 어른의 그것의 축소판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우리는 혹시 학교생활을 할 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모두가 그래왔으니까' 별 문제의식없이 눈감고 지나가지는 않았는가? 김선정 선생님(작가)의 이런 날카로운 시각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한다. 이래서 작가만의 시각이 담긴 에세이가 좋다. 아주 흥미롭게 읽은 대목이다.

[이해와 오해사이] 아이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이 일에는 섬세한 후속작업이 필요하다. 작가가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며 느낀 감정과 교훈을 담담하게 써내려가는데 흡사 선생님이 그 날 일을 적은 교무수첩을 몰래 읽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섬세한 후속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것의 필요성은 생활에서 섬세한 감정의 돌봄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이고, 그런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필요성도 받아본 이들이 느끼는 거라는 것을 최근 들어 느꼈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나의 곁을 감정의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마니또를 합시다] 마니또는 우리말로 '콩깍지'라고 한다. 마니또를 했을 때 나는 혹시 나를 별로 안좋아하는 친구가 나를 마니또로 뽑았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걱정을 다했었다. '누구나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조건 없는 친절을 받아보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교실에서의 콩깍지는 더욱 소중한 것 같다. 우리 아이도 학교에서 '비밀친구' 뽑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꼭 선물을 하지 않더라도 다정한 말을 해주거나 남모르게 도와주는 것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외로운 아이도 계속 외롭진 않다] 이 장에서는 작가의 모든 말들이 내 마음에 와서 꽂혔다. '한때 내가 생각했던 멋진 교사는 어린이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교사였다.'라는 첫문장에서 비단 교사뿐만이 아니라 부모도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는가. 친구같은 부모가 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서, 아이에게 친구같은 부모가 되고싶다고 말하는 어른도 얼마나 많은가. '그때는 몰랐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아이들은 힘이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교실에 법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다른 종류의 힘이 작동한다는 것을. 그런 자유 속에 더 외로운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찌르르 하고 울렸다. 왠지 우리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유' 속에 약자들은 도태되고, 자유를 쟁취하지 못한 패배자로 살아간다. 예외도 있지만 '자유'를 쟁취한 자는 언제나 힘이 있는 자들이지 않았던가. 그들은 자유를 부르짖는다. 지금도.

[우리가 놀면 다 놀이터] 시간과 친구만 있으면 아이들은 어디서든 논다는 문장이 요즘 우리 아이를 보면서 실감났다. 엄마가 이어준 친구가 아니라, 언덕길에서 놀다가 만난 친구와 서로 약속을 하고 방과후에 만나 아파트 언덕길에서 썰매를 타는 걸 보고 깨달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라는 것을. 조바심 내지 않아도 아이는 그렇게 자기가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들고, 함께 노래를 하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걱정해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닌 나였음을, 내게 가방까지 맡기며 빙판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아이를 보고 알았다. 나야말로 늘 '뭔가를 하느라' 인간관계 단절상태에 있었다.

[올해의 한 아이] 는 뭉클했다. 이 장을 다 읽고나니 영화 <디태치먼트>가 생각났다. 작년에 라깡정신분석 발표회 때 소개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이 가진 아픔과 갈등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려면 우리는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점점 교권이 추락하고 교사의 권한이 축소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도 생기지 않을거라는 무력감을 정치와 우리 사회 (부모)가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의 학생들의 학교에서의 모습은 어떤가. 학부모들은 무엇을 원하는걸까.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들을 대학에 보내면 어떤 사람이 될까. 대학은 왜 가야할까. 왜 아무도 문제의식이 없는걸까. 의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자기자신을 만들어나간다. 그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 아이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폭도 넓힌다. 결코 헛되고 무용한 견딤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교실은 그것을 배우는 곳이니까. 81쪽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가 어렸을 때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 없어졌고 작가의 말대로 아이들의 집을 포함한 가정환경은 미지의 세계가 된 것이나 다름없어졌을것이다. 함께 사는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그렇게 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입시기계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인정해주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관이나 윤리 등을 우선으로 가르치고자 한다면 지금과 같이 휴식없는 삶을 사는 어린이들에게 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 나의 과거를 들추며 너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었잖아! 네가 무슨 그림책을 본다고 그러니! 하고 손가락질할 사람들이 물론 있겠지.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작가 뿐만 아니라 소위 '이불킥'을 하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에 서툴렀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일은 어렵다. 잘 모르면서 SNS 상에서 잘난 척을 한 적도 있었고, 한 줌의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던 적도 있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아마 부끄러운 과거 대회를 한다면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나는 지금까지 나와 남에게 친절하거나 겸손하게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겠나. 삶은 살아가야 하고 이왕 중단하지 않고 사는 거라면 전보다는 더 나은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지.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는 또한번 내게 겸손하고 뻔뻔해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책을 읽으며 흐느껴 울었다. 순수함이 가슴아프게 다가왔고, 이렇게 솔직한 자기고백과 반성은 자기를 내보이며 내가 진짜 가진 것보다 더 크게보이도록 광고하는 이 시대에 정말 귀하기 때문이다. 귀한 것을 보고 나니 이런 가치를 남겨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많이 찍고, 메모리카드에 많이 남겼지만 그 행위 자체로 정말 보고, 관찰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사진이 정말 내 느낌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나서 누군가가 성의껏 관찰하고 기억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했다.

훅 흘러가버린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잠깐만 눈을 감고 그때로 돌아가본다. 그 때의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진 아이였고, 어떤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으며,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어떤것에 관심이 있었는지, 그것을 떠올려보았으면 좋겠다. 혹시 그 때에 화해하지 못한 나를 두고 왔다면, 우리가 애썼던 지난 날로 돌아가 충분히 애썼다고 화해하고 토닥여주는 건 어떨까.

※ 문학동네로부터 <너와 나의 점심시간> 리뷰어로 선정되어 가제본을 읽고 진심을 다해 쓴 서평입니다. ^^

https://blog.naver.com/hatbit_therapy/22297073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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