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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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치에 앉아 있는데 무릎으로 툭, 떨어지던 노란 은행잎 한 장 - 무릎에 노란 멍이 들게 한, 그 멍을 보고 비로소 가을이 왔구나, 가슴 철렁하게 만든 - 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연준 산문집, 《소란》, <겨울 바다, 껍질> 중)

•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 불쑥 돋아난 이후로, 내 생은 저 떨어지기 직전 '가을 나뭇잎의 소란' 같다고.(박연준 산문집, 《소란》, <일곱 살 클레멘타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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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노란 잎을 줍는다. 작고 예쁘거나 크고 색이 선명한 놈들을 골라 줍는다. 그러고는 그맘때 읽고 있는 책에 끼워 넣는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면서도 '난 기억할 거야' 장담하며 책장을 숭텅숭텅 넘기며 적당해 보이는 중간쯤에 끼워 넣는 것이다.

올해의 노란 잎은 소란과 함께 왔다. 시인의 산문은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하고 '무릎에 노란 멍이 들게'하고 '가을 나뭇잎의 소란'을 알아차리게 한다. 박연준 시인의 시보다 산문을 먼저 마주한 일이 아쉽기까지 하다.

나는 오늘도 노란 잎을 주워왔다. 차가 지나는 길 옆에서 주워온 잎이라 물휴지로 닦아 말렸다. 잎 앞면과 뒷면에서 까만 때가 묻어 나온다. 5년 전의 나였다면 노란 잎을 닦았을까 닦지 않았을까. 5년 후의 나도 여전히 노란 잎을 줍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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