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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코러스
영이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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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다룬 수많은 책들이 행위성이라든지 윤리라든지 폭력성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UI를 집중적으로 조망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UI를 기껏해야 게임을 보조하는 안내문구 출력창 정도로 인식했을 것이다.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는 나 역시 UI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은 적은 없었다. UI창은 그저 내가 몇 킬 몇 데스를 했고, hp는 얼마나 남았고 저장이나 하려고 들락거리는 상황표시판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변두리의 영역을 파고드는 작가의 집요함에서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갔다.

이 책의 저자가 가장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리스 연극 시대에나 활용됐던 코러스와 니체가 주장한 디오니소스적인 정취에 대한 이론이다. 실제로 그리스 시대 연극엔 연극의 중간중간마다 노래를 부르며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이나 상황을 설명해주는 합창단이 있었던 듯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적인 운율로 합창을 하며 줄거리 요약을 해주는 것.

그리고 UI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정취를 제공한다는 것. 황홀경, 몰입, 정취. 그냥 주변의 현실을 잊을 정도로 어느 한가지에 자아도취 수준으로 몰입한다는 것이다(실제로 나 역시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디오니소스적으로 몰입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현실을 잊어버리고 그 세계 속에 완전히 몰입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가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니까)

물론 저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하진 않는다. 저자는 인디게임계의 전설 <언더 테일>을 예시로 들며 UI가 어떻게 플레이어를 현혹시키고 기존의 틀을 깨고 게임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한다.

대부분의 게임 플레이어는 UI가 절대불변의 고정된 상황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암묵적인 규칙 중 하나다. 상상해보자. 롤이나 오버워치를 하는데 갑자기 킬로그창이 꾸물꾸물거리거나 미니맵이 자기 멋대로 크기를 늘렸다가 줄였다가 하면 게임에 얼마나 방해가 될지. 상황판은 말 그대로 상황판이다. 상황의 내용이 변하더라도 상황판이라는 틀은 절대 변하면 안 된다. 실제로 어떤 게임을 하든 UI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몰입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그곳에 분명하게 있지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다.

나 역시 <언더 테일>을 플레이해보았고, 나의 게임 경험 중에서 <언더 테일>처럼 유기체처럼 시각각 변화하는 UI를 가진 게임은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든 <언더 테일을> 플레이해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언더 테일>은 UI가 정말 시시각각변한다. 만나는 적에 따라서. 레서 도그라는 몬스터를 반복적으로 쓰다듬어주면, 레서 도그의 목이 점점 길어지면서 하단의 UI를 뚫고 지나간다든가, 게임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스고어라는 몬스터가 게임의 선택창 중 하나인 '자비' 인터페이스를 창으로 박살내면서 전투 외엔 선택지를 두진 않는다든가, 최종보스의 경우엔 아예 UI자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르면 갑작스럽게 게임이 플레이어를 튕겨낸다. 정말 말 그대로 플레이어를 튕겨낸다. 게임이 강제로 종료되며 윈도우창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게임을 실행해도 검은 화면만 뜰 뿐이다.

결국 플레이어가 UI에 대해 갖던 신뢰는 그것이 공고한 진입장치의 역할을 해 주리라는 기대일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게임 속 세계로부터 갈라놓고 지켜 주리라는 착각이기도 한 셈이다. 마치 그리스인들이 "자신을 현실 세계로부터 완전히 차단하고 자신의 이상적 지반과 자신의 시적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자기 주변에 "살아 있는 성벽"을 쳐 놓았듯이 말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간과하고 이런 말까지 이어 붙인다.

방금까지 나에게 그 무엇도 생생하고 완전한 실재였던 게임 속 세계를 외부로부터 보호해 주는 벽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렇게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게임 바깥의 현실을 보호해줄 벽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이 글의 초반부에 잠깐 언급했던 디오니소스적인 정취. 현실과 몰입의 경계가 사라짐. 그 경계를 없앤 몰입의 상태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언더 테일>의 경우처럼 UI가 사라진 경우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을까? 이성과 비이성 혹은 카오스와 코스모스, 그것도 아니면 규칙과 무규칙의 경계가 사라질 정도의 몰입.

고대 그리스의 서민들의 콘텐츠 중 하나였던 연극. 그리고 코러스.

현대인들의 콘텐츠 중 하나인 게임과 UI.

그리고 현실?

고백컨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약간의 섬뜩함을 느꼈다. 저자의 말처럼 게임과 연극에서 관객과 플레이어를 그 콘텐츠로부터 구분지어주는 UI와 코러스가 있다면, 게임 바깥의 현실과 나를 보호해주는 벽은 어디에 있을까? 이따금 현실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은데, 아마 나와 현실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경계선이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언가 어렴풋한 경계선을 의식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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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밭 엽기전
백민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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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잔인하다고만 치부하기엔 너무 잘 썼다. 아무리 생판 난리를 쳐도 사회라는 견고한 체계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가련한 괴물들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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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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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포함돼도 손색이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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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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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좀 다시 해라 진짜 살 마음이 안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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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나더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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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산북스에서 나오는 해외소설은 믿고 거릅니다. 번역 때문에 못 읽겠네요. 이 소설 뿐만아니라... 다른 소설들도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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