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아남았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집 에프 클래식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옥용 옮김 / F(에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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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위대한 문학 작품보다 작가의 인생이 더 극적일 때가 있다. 브레히트는 아마도 자신이 쓴 작품보다 더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작가일 것 같다. 독일 나치 정권의 탄압과 분서(焚書) 그리고 전쟁과 망명. 망명지 미국에 대한 환멸과 동독으로의 정착. 동독 정권에 대한 비판 등등. 시대에 순응해 살기에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작가로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인 것 같다. 삶에서 체화된 작품을 읽기 기대하면서 브레히트의 시선집 , 살아남았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감 속에서 첫 번째 시 아펠뵈크 또는 들에 핀 백합을 읽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당황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 영아 살해범 마리 파라에 대해를 읽으면서 속으로 소리를 지를 정도로 놀랐다. 물론 작가가 이런 시를 쓰게 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염두해 두면서 책을 읽었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오늘 아침 상황은 영 적절하지 못했다. 아침에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고 나서 이런 이를 읽다보니 책에 신문기사에 인륜을 저버린 패륜이라는 기사로 도배될 만한 부모 살해, 자식 살해를 소재로 한 시를 읽으니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물론 작가와 시인은 시대의 보편타당한 일반적 가치에 대해 저항하고 항거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와 시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보편타당한 일반적 가치가 상징하는 권위를 깨트리기 위해 일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작가이고 시인이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가족에 대한 살해로 시작되는 시집을 읽다보니 하루의 시작이 불편하다.

 

그리고 시집이 전체적으로 작가가 살아온 시대를 반영해서 인지 어두움, 죽음, 고난, 차가움, 전쟁 등이 시집 전반에 드리워져있다. 심지어 어린이를 주제로 하는 하는 ‘3부 어린이 십자군에서조차 어린이들의 탄식과 고난이 가득 차 있다. 그래도 마지막 ‘5부 묘비는 필요 없다네에서는 따뜻함, 즐거움, 기쁨 그리고 세상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기는 하다. 편집자의 의도인지 원래 브레히트의 작품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선집의 제목이 , 살아남았지라고 정할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 살아남았지라는 시 자체는 인생의 희망과 기쁨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암울한 시절을 지나 평화를 찾게 된 작가의 인생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겁게 진행되어 읽고 난 후의 마음이 무겁다. 시와 소설을 읽는 묘미가 작가가 의도하는 방향에 공감하는 것에 있기는 하지만 어둡고 무거운 마음속에서 겨우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는 내용의 글을 희망으로 가득차야 할 새해 초부터 접하게 된 것이 불편하기는 변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하나의 시집이 아니라 브레히트의 여러 시집과 시에서 편집자가 선정해 뽑은 시선집이라는 것을 알려둔다. 우리나라 역자가 선정했는지 편집자가 했는지 독일에 원래 있던 시선집을 번역한 것인지는 설명이 없어서 모르겠다. 보다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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