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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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시절 추천 도서로 우연히 접해 읽게 된 장미의 이름’. 초반부 100페이지 정말 읽기 힘들었다.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기자 마술과도 같은 소설 속에 세계로 빠져들었다. 과연 이런 책도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흥분했다. 그 이후로 나는 에코의 팬이 되어,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모두 읽고 모두 소장하고 있다.(‘전날의 섬의 경우 우리나라 번역본이기는 하지만 11쇄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이번 책은 프라하의 묘지’(프라하의 묘지는 안타깝게 12쇄본이다.)이다. 이 책 역시 소설치고는 읽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19세기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에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씩 뒤따라간다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에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지식의 향연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 책도 기존의 에코의 소설들이 쭉 그래왔듯, 유럽 사회의 비합리성 또는 유럽 사회의 문제점을 까발리고 있다. 에코는 우리가 합리적이고 지적이라고 생각하는 서구의 문화나 업적들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인간의 탐욕과 편견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역겹고 비열한 인간으로 등장하는 소설 속 주인공 시모네 시모니니. 에코는 그의 행태를 통해서 스스로 합리적이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이 사실은 편견으로 가득 차있으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때문에 유럽인의 입장에서는 시모니니의 글이 더욱 그럴 듯하며, 어떻게 보면 그의 글이 더 사실 같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유럽인이 아닌 에코를 사랑하는 한국의 독자들이다. 잠빡하면 시모니니의 글에 현혹될 수도 있겠지만, 수만리 떨어진 한국에서 다소 객관성을 잃지 않고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시모니니의 글에 전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에코의 글을 우리의 상황 속에 투영해 본다면, 우리 역시 천박한 모습을 금세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글들을 외국인과 북한으로 치환하여 본다면 그 상황은 전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다문화사회와 통일을 외치고는 있지만 우리들 가슴 속 한 곳에는 적개심과 두려움이 점점 쌓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이용하는 한국의 시모니니가 언제 어디서 등장할지 모른다. 이런 사실을 에코의 책을 읽는 한국의 독자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에코의 작품은 언제나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그가 유명한 학자이자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끊임없는 열정과 신념이 그의 책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지에서 오는 오만과 독선과 음모를 들춰내고, 거짓에 속지 않고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의 글들은 늘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바로 이런 글과 책들이 수백 년의 시간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을 고전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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