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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았습니다 - 김근태 이야기 ㅣ 역사인물도서관 1
최용탁 지음, 박건웅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12월
평점 :
어린 시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위인 전집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위인전을 통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그 사람의 업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역사 상 중요했던 인물들의 삶에 대해 계속 읽다보니 세계사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까지 위인전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중학교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위인전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은 위인전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위인전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에 당시에는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위인전이 바람직하지 않은 책이라는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형식만 놓고 보자면, 대부분의 위인전은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위인은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 뭔가 다르고, 성장 과정에서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탁월한 점이 크게 부각이 된다. 태어날 때 별똥별이 떨어졌다는 둥, 몸에 북두칠성 형태로 점이 있다는 둥, 위대한 인물이 죽었을 시점에 태어났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운명에 이끌려 누구도 넘보기 힘든 커다란 업적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엑스트라로 평가 절하된다.
과연 그럴까? 사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위인전은 어떤 한 사람을 미화하기 위해 창작되고 꾸며지고 과장된다. 솔직히 말해 태어날 때부터 위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쌓여가면서 그리고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서 큰 일이 이루어질 텐데, 위인전은 마치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완전히 변화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 책의 김근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김근태는 어떤 인물인가! 민주주의를 위해 한 평생 노력해온 사람이다. 하지만 김근태가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홀로 커다란 짐을 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를 바라보고 선배들과 동료들과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가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변절한 많은 사람들과 달리 엄청난 고문 속에서도 꿋꿋이 민주화를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간 사람이다. 사실 김근태는 우리나라의 암울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평평한 샐러리맨이나 교수 또는 회사 임원이나 판검사를 했을 인물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이 그를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김근태를 운명적으로 민주화를 위해 큰 짐을 지고 태어난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 느낌일지 모르지만 민주화의 상징 김근태를 범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위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해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것이 무슨 영웅적 행동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을 모아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특정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은 뉘앙스를 주니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형식으로 단기간에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김근태를 위대한 위인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했다면, 위대한 인물만이 민주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민주화를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학생들에게 김근태처럼 위대한 인물이 되려면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나머지 수십만 명은 무엇이 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디에서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와 밝은 미래를 꾸준히 걸어가는 한다고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김근태의 삶과 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